“한국이 러시아에 진실 은폐 요청”

우주인 고산 → 이소연 교체 미스터리

2008-03-19     윤지환 기자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우주인관리위원회가 오는 4월 8일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에 탈 한국인 첫 탑승우주인을 고산(31)씨에서 이소연(29)씨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고씨가 러시아 탑승훈련과정에서 몇 가지 규정을 어긴 게 원인이다. 고씨는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 밖으로 갖고 나올 수 없는 훈련교재를 들고나가는 등 몇 가지 보안규정을 어겨 교체가 불가피하게 됐다는 것. 우주인 교체배경을 둘러싸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논란이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여러 의혹들이 꼬리를 문다. 산업스파이설, 정치세력 개입설까지 나오는 분위기다. 뭣보다 이번 사건이 석연치 않은 건 러시아와 한국의 설명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한국 쪽이 우주인교체를 결정했다고 밝힌 반면 우리나라는 러시아가 우주인교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맞받았다. 일부에선 비밀사항도 아닌 일반교제유출로 우주인이 바뀌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우주선발사까지 채 한 달이 남지 않는 때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항우연은 우주인 교체파문에도 ‘최초 우주인탄생 프로젝트는 이상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초의 우주인탄생을 기대하던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항우연이 교체배경에 대해 자세한 설명 없이 사건을 얼버무리려는 느낌을 주고 있어서다.

항우연은 우주인교체와 관련해 제기되는 여러 추측들과 의혹에 대해 '의무위반에 따른 개인적 실수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며 파문 잠재우기에 나섰다.

최기혁 항우연 우주인개발단장은 지난 12일 대덕특구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재를 복사한 건 러시아 쪽에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이번 교체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면서 "두번에 걸친 교재유출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의도적 자료유출 등 의혹을 일축했다.

최 단장은 또 "지난해 9월 고씨가 개인물품을 국내로 보내는 과정에서 고씨의 실수로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의 교재가 딸려왔다. 이를 러시아 쪽에서 발견해 곧바로 관련 책을 돌려보냈다. 일반우편으로 붙이다보니 한 달 넘게 걸렸다"고 밝혔다.

최 단장에 따르면 고씨는 이를 포함해 두 번의 의무위반이 있었다. 그밖의 문제는 없었다는 게 최 단장 설명이다.


교재 유출, 내막 따로 있나

그러나 최 단장 설명은 많은 의문들을 풀어주기엔 부족하다. 교재반출 문제만 해도 그렇다. 러시아 쪽이 서면으로 공식 항의할 정도로 중요한 교재임에도 한 달이나 걸리는 일반우편으로 되돌려줬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또 항우연은 교체의 결정적 원인에 대해 "고씨는 2월 지인을 통해 열람해선 안 되는 책을 사서 갖고 있는 게 두 번 발각됐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고씨의 잇따른 의무위반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해 지난 11일 위원회를 열고 우주인을 바꾸기로 결정했다는 게 항우연 설명이다.

이에 대해서도 의문이 일고 있다. 고씨가 머물고 있는 가가린우주센터는 엄격한 통제시스템을 갖추고 있기로 유명하다. 이곳에선 출입자 모두의 소지품을 철저히 검사한다. 외부반출 품 또한 마찬가지다. 국가중요기관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선 구 소련시절의 철저한 검열이 그대로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외국인인 고씨의 개인물품이 검열 없이 밖으로 나갔다는 항우연 설명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또 우주인교체를 부를 만큼 중요한 교재를 고씨가 어떻게 샀으며, 또 왜 샀는지도 의문이다.

우주항공분야 관련교재에 대한 러시아의 보안은 아주 철저하다. 모스크바와 샹트 뻬쩨르부르크의 우주항공기술대학교가 외국인에게 개방된 건 불과 수년전의 일이다. 학교에서 쓰는 우주항공 관련교재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씨는 러시아당국이 문제 삼을 정도로 중요한 교재를 어떻게 구한 것일까.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선 충분한 설명이 없다.

또 그가 이 교재를 산 이유도 불분명하다. 항우연은 고씨가 열정적으로 공부하려다 너무 앞서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교재를 고씨가 직접 읽기위해 샀다고 보기 힘들다. 고씨가 러시아어에 그만큼 능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는 그 문법의 특성상 격변화가 많아 가장 배우기 어려운 말 중 하나다. 특히 전문기술용어로 가득 찬 교재를 러시아에 간지 1년 남짓한 고씨가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점을 감안하면 고씨의 위반 행위가 단순 호기심이나 지나친 의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항우연의 설명은 억지스럽다.


우주인 둘러싼 진실게임

항우연은 항간의 의혹제기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전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투성이다.

교체사실이 밝혀진지 하루만인 지난 11일 러시아는 “우주인교체는 한국이 결정한 것이다. 우리(러시아)는 한국 쪽 의견을 받아들인 것 뿐”이라고 밝혔다.

아나톨리 페르미노프 러시아연방우주청장은 이날 “한국이 우주인교체를 결정했으며 앞서 한국과 러시아 우주인훈련센터와 협의가 있었다. 한국이 결정한 부분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교체를 결정한 건 전적으로 한국이란 것. 이는 러시아가 교체를 강하게 요구했다는 항우연이 밝힌 내용과는 다소 차이 나는 대목이다.

최 단장은 "지난 6일 러시아현지에서의 협의 때 러시아로부터 탑승우주인 교체권고가 있었다. 발사가 임박한 때 하루라도 빨리 교체우주인에 대한 기술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러시아가 교체를 요구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러시아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의혹은 더욱 짙어진다.

러시아의 인터넷언론인 <렌따>는 ‘한국우주인이 훈련센터 비밀규정위반으로 다른 한국 여성우주인으로 바뀌었다. 한국우주인 고산씨는 허가 없이 훈련소 내부 자료를 밖으로 무단 유출했고 자료를 익명의 외부사람에게 노출시키는 문제를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내부자료를 익명의 외부사람에게 전했다는 대목이 관심을 끈다. 렌따는 그러나 익명의 외부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고씨는 한국의 스파이”

러시아 현지의 한 소식통은 “고산씨가 어떤 이유로 자료를 유출했는지에 대해선 이곳 언론도 다루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론들은 고씨가 누군가와 연계돼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어 “일부 러시아 언론들은 한국이 사건을 숨기려 한다. 고씨가 중요 문서를 빼내려다 훈련센터당국에 적발되자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번 사건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일간신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지난 11일(현지시간) ‘고씨가 지난해 9월과 올 2월 허가를 받지 않은 채 훈련 중이던 가가린우주센터 밖으로 우주비행훈련 관련 문서를 갖고 나가 복사하다 걸렸다’고 전하면서 ‘한국이 우주인후보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러시아에 사건은폐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러시아언론인 <어드바이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고산은 한국의 스파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어드바이저>는 ‘고산은 러시아의 우주항공기술정보를 빼내기 위해 한국이 보낸 간첩이다. 그런 사람을 절대 우주로 보내선 안 된다’고 비난했다.

이밖에 다른 러시아 언론들도 ‘한국은 고산이 두 번에 걸쳐 자료를 유출한 게 실수라고 말하지만 실은 당국으로부터 여러 번 적발됐다. 고산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자료를 유출했고 결국 우주인자리를 이소연에게 넘기게 됐다’고 입을 맞춘 듯 보도하고 있다.

이를 종합해볼 때 러시아는 고씨의 잇따른 자료유출로 퇴소가 불가피하다고 한국에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리나라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우주인을 이씨로 바꾸는 안을 내놨을 수도 있다. 우리 쪽이 고육지책으로 교체안을 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러시아는 이번 우주인 발사사업 자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고씨가 자료를 유출했더라도 일급 국가기밀사항이 아닌 이상 우주인교체 선에서 눈감았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우주항공기술 철통보안

러시아의 우주항공기술에 대한 보안시스템은 그야말로 철통이다.

러시아 항공우주전문가는 외국출장 때 일일이 정부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한국항공우주 분야 관계자가 러시아를 방문할 때도 미리 여권을 보내 정부승인을 얻어야 할 만큼 까다롭다.

2007년 여름엔 이바노프 러시아 제1부총리가 수출통제위원회회의에서 외국과 벌이고 있는 항공우주협력사업을 철저히 감시할 것을 지시하면서 한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발사체분야 협력과 관련, 러시아 정부와 의회승인을 얻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우리와 맺은 ‘우주기술협력협정’에 대한 러시아정부 승인과 의회비준, 획득한 기술에 대한 제3국 유출방지를 약속하는 우주기술보호협정 등의 통과가 수년을 끌었다. 100㎏급 위성 자력발사 일정도 2005년 말에서 올해 말까지 3년이나 늦춰지기도 했다.

항공관련대학에서도 유학생들에겐 공개하지 않는 실습이 있는가 하면, 아예 수강을 시키지 않는 과목도 아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