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엘] 446억 해외 빼돌리고 무역보험공사와 유착 의혹도

2014-11-03     박시은 기자

대출사기 들통나자 돌연 법정관리 신청
금융권 피해액 6100억…서류 믿었는데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가전업체 ‘모뉴엘’의 법정관리 후폭풍이 거세다. 모뉴엘은 수출 실적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벌인 대출사기 행각을 벌이다 적발됐다. 이로 인한 은행권의 피해액은 6000억 원이 넘는다.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 주권 매매 거래도 정지됐다. 이에 검찰은 박홍성 모뉴엘 대표를 구속 수사 중이다. 이런 와중에 무역보험공사 실무자가 모뉴엘의 대출사기에 가담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로봇청소기로 유명한 모뉴엘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이 극찬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기업이다. 모뉴엘의 지난해 매출은 1조2737억 원, 영업이익 1103억 원이다.

모뉴엘은 6년간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또 지난달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14’에서 5년 연속 단독 전시관을 꾸몄다. 유럽 최대 가전전문매장 미디어마트와 프랑스 대형 유통회사 E르끌래르와의 입점 계약도 성사돼 내년 유럽 매출 비중 30% 증가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달 20일부터 이 같은 모뉴엘의 포부는 모두 물거품이 됐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 발단이다.

더욱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유가 대출사기 행각이 들통 난 것 때문으로 드러나면서 파장이 일어났다. 수입업체가 물품 하자를 이유로 대금결제를 거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밝힌 것과 달리 실제로는 관세청 조사로 사기 행각이 발각된 것이다.

모뉴엘은 미국과 홍콩 사무소에서 수출대금을 부풀린 가짜 서류를 만들어 국내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 대출 만기가 다가오면 수출성과를 부풀려 서류를 조작해 위조된 실적을 근거로 무역보험공사로부터 신용보증을 받았다. 그렇게 한 곳에서 빌린 돈으로 다른 금융기관의 대출금을 갚는 돌려막기를 해왔다. 해외지사를 통해 서류상의 매출이 조작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매출채권은 외상거래에서 발생한다. 즉 모뉴엘이 제품을 총판업체에 팔면 총판업체는 현금이 아닌 매출채권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모뉴엘은 이 매출채권을 은행에 팔아 현금을 받았고, 운영자금으로 조달해왔다. 지난해 모뉴엘의 매출채권 규모는 1조1000억 원이 넘는다.

이렇게 가공으로 만들어진 매출은 모뉴엘 전체 매출의 80%가량인 것으로 알려진다. 매출채권을 토대로 이뤄진 성장인 만큼 위기 또한 금방 찾아올 수밖에 없다. 매출채권을 제때 은행에 갚지 못하면 순식간에 회사가 재무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5년간 매출이 15배가 늘어난 모뉴엘의 성공신화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던 셈이다.

금융권은 모뉴엘의 성장세를 근거로 의심 없이 쉽게 돈을 빌려준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른 금융권 피해액은 약 61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은행 1500억 원, 산업은행 1165억 원, 외환은행 1100억 원, 국민은행 700억 원, 농협은행 700억 원, 수출입은행 713억 원 등 1금융권은 약 5900억 원이다. 2금융권도 200억 원으로 모두 6100억 원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모뉴엘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해 대손충당금을 쌓고 손실처리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보증서를 발급한 무역보험공사는 은행들이 모뉴엘에 해준 외환대출 중 3300억~3400억원에 보증을 서 큰 피해가 예상된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외환은행, 국민은행 등을 상대로 모뉴엘에 대한 부실대출 혐의가 있는지 조사에 나섰다.

무역보험공사와 내부유착 의혹도

현재 모뉴엘은 5000억 원 규모의 가짜서류를 꾸며 금융권에 대출을 받은 혐의로 검찰, 관세청, 금감원의 전방위 조사를 받고 있다. 박홍석 대표와 부사장, 재무이사 등 임원 2명은 구속된 상태다.

특히 박 대표는 400억대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개인 재산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2012년 회사 돈으로 서울 청담동 고급 아파트를 42억 원에 사들인 후 가족과 함께 거주한 것이다.

더욱이 모친과 동생을 모뉴엘과 자회사의 핵심 요직에 앉혀 급여를 지급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자회사인 ‘잘만테크’와의 불공정거래 의혹도 제기됐다. 박 대표의 동생인 박민석씨가 대표로 있는 잘만테크의 주식 거래량이 모뉴엘 법정 관리 신청 전 급등했기 때문이다.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미공개 정보를 파악한 세력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거래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잘만테크의 주식 거래량은 법정관리 신청 전인 지난달 17일 18만4000주로 하루 전보다 10만 주 정도 증가했다. 법정관리를 기점으로 잘만테크 주가는 약세로 돌아섰고, 계속 하한가를 기록하고 있어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무역보험공사와 모뉴엘 간의 내부유착 의혹도 제기됐다. 2009년 1월부터 1년 동안 모뉴엘 담당 팀장으로 근무했던 모 부장이 모뉴엘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나흘 전에 돌연 사표를 낸 것이다. 이 직원이 팀장으로 재직한 이듬해에 무역보험공사의 모뉴엘 수출채권 보증한도는 6배 이상 급증했다. 현재 내부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모 부장은 가족이 있는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무역보험공사는 정 부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채 내부직원과 모뉴엘 간 유착관계와 비위 등에 대한 조사에 차수했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내부 직원의 유착관계, 비위 여부 등을 철저히 조사하고 검찰 조사에도 적극 협조할 것”이라며 “현재까지 모뉴엘 사태와의 연관성이 확인된 사실이 없으나 철저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모뉴엘은 어떤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다. 박 대표는 지난달 23일 제주도 사옥에서 임직원들에게 사과한 이후 종적을 감췄다. 그러다 지난달 30일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많은 친구들이 지금 제주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잘못된 방법을 만든 나 때문에 직원들을 고생하게 해서 진짜 죄송합니다”고 밝혔다. 현재 박 대표는 구속 상태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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