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리즈6] 남남갈등 부른 대북전단
북한 꾐에 빠지지 않을 혜안 필요하다
심리전으로 북한 굴복시키려다 오히려 당한 꼴
지역선정·시간선택 등 보수단체도 전략 필요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나라가 시끄럽다. 지난 25일 경기 파주 임진각 일대는 극심한 남남갈등이 벌어졌다.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는 보수단체와 이를 막으려는 인근 지역주민 그리고 일부 진보단체들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사실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다만 최근들어 북한이 이를 문제삼아 남북고위급접촉 개최 문제 등을 걸고넘어지고 대북전단이 매달린 풍선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면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보수단체들이 대북전단을 북으로 날리는 행위는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 항공법 적용을 고려했으나 이에 사용되는 대형 풍선이 항공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대형풍선이 항공법 적용 대상인 ‘초경량비행장치’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공법은 초경량비행장치의 신고, 변경신고 또는 이전신고를 하지 않고 비행을 한 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항공법 외에도 여러 가지 적용 가능한 법률을 검토하고 있으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대북전단 살포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25일 경기 파주 임진각 일대는 남남갈등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오전 11시 20분경 보수단체는 오후 1시로 예고된 행사를 위해 트럭에 대북 전단 살포에 필요한 장비와 물품 등을 싣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마스크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진보단체 회원 일부가 트럭을 기습, 대형 풍선을 칼로 찢고 전단을 도로 밑으로 던져버렸다. 경찰이 이들 가운데 한 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실랑이도 벌어졌다.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날 오전 9시쯤부터 주변 농민들이 임진각 주차장에 트랙터 20여대를 배치해 실력 행사에 들어갔었다. 주민과 진보단체 200여명은 오전 11시 40분쯤 서울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을 태우고 출발한 전세버스가 임진각 입구에 도착하지 버스를 막고 구호를 외치며 날계란을 던졌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버스 바깥으로 물을 뿌렸고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30여 분간의 대치는 경찰의 개입으로 진정됐다.
하지만 오후 3시쯤 보수단체가 새 풍선을 가져와 전단 살포에 나섰으나 역시 저지됐다. 결국 보수단체 회원들을 태운 버스는 오후 4시 20분쯤 임진각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오두산 통일전망대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다리고 있던 인근 상인과 진보단체 회원 등 100여명에게 막혔다. 이들이 전단 상자를 빼앗아 불태우려 하면서 몸싸움도 벌어졌다. 양측은 경찰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다 오후 6시쯤 해산했다.
하지만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결국 김포시 월곶면으로 이동해 오후 7시 20분쯤 대북 전단 2만장을 풍선 하나에 담아 날려 보냈다.
북한 심리전에 당한 남한 사회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전단 살포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번처럼 큰 갈등의 원인으로 발전한 것은 북한의 개입 때문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꾐에 우리나라의 보수·진보세력이 넘어간 꼴이다. 거기에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 정부도 한몫했다.
북한은 대공포를 쏘는 등 군사적 대응으로 남남갈등을 부추겼다. 거기에 남북고위급접촉 개최 문제도 걸고 넘어져 정부를 몰아붙였다. 북한은 25일 임진각 충돌사건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파주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과 주민들이 트랙터를 동원해 보수단체의 풍선을 빼앗아 찢어버리면서 완강한 항의 투쟁을 벌였다”고 했다.
사실 대북전단을 날리고 안 날리고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보수단체들이 매년 대북전단을 날려 왔지만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의 한마디에 국내 언론은 물론 보수·진보세력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사건이 커졌다.
결국 이번 사태의 승자는 북한이다. 말 한마디로 남남갈등을 유발했으니 이보다 훌륭한 전술도 없다. 재미있는 점은 전단을 날리고자 하는 보수단체와 이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갈등에 환경단체와 통진당 당원까지 합세해 싸움판이 커졌다는 점이다.
정작 보수단체들이 대북전단을 날려보내 심리전으로 북한을 굴복시키고자 했는데 오히려 북한의 심리전에 말린 형국이다. 심리전은 싸우지 않고 적을 설득해 굴복시키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방법으로 최고의 전쟁기술이다.
통진당·환경운동연합 등장 반갑지 않다
임진각 대북전단 살포 충돌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긴 또 다른 궁금증은 갑자기 등장한 통진당이다. 앞서 복면을 쓰고 풍선을 찢으며 격렬하게 활동한 사람들은 통합진보당 파주시당 위원장이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 회복 파주 시국 회의’라는 단체 소속 회원으로 알려졌다. 현장에는 통진당 소속 파주 시의원도 참여했다. 통진당의 정체성 자체가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등장이 결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환경운동연합이 26일 경찰청 사이버민원실에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등 보수단체 회원들의 ‘쓰레기 불법투기’를 단속해달라고 신고했다. 이들은 보수단체들이 대북전단 수만 장과 라디오, 지폐 등을 공중에 살포하는 것은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을 오염시키는 범칙행위라며 경찰의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운동연합은 대북전단 살포 자체는 경범죄 처벌법 제3조 1항 11호, 쓰레기 투기에 해당한다며 경찰에 적절한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북전단이 자연에 방치될 경우 환경을 오염시키고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대북전단 살포가 끊이질 않는다면, 경범죄가 아닌 ‘폐기물 관리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번 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대북전단을 살포하기 위해서 꼭 임진각을 고집할 필요도 없었다. 낮이 아닌 밤에 풍선을 날렸어도 됐다. 이젠 보수세력도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알았다면 남남갈등은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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