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놀라게 했던 사형수들 요즘

사형제 폐지의 두 얼굴

2008-02-13     이수영 기자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30일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가 분류하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선포됐다. 이어 하루 뒤 단행된 특별사면에서 6명의 사형수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참여정부에서 사형수 감형조치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이날 조치로 우리나라에 복역 중인 사형수는 58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되면 사형 찬성론자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일 지라도 이들의 형 집행을 밀어 붙이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서 ‘기사회생(起死回生)’이란 한마디가 떠오른다. 담장 밖에선 ‘극악무도한 흉악범에게까지 자비를 베풀 필요가 있느냐’는 격론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담장 안 당사자들은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돼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그 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의 최근 모습을 들춰봤다.


신문탐독·책벌레 유영철

유영철은 지금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서울구치소 생활지도계 관계자는 “유영철이 매일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비교적 성실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씨는 아침마다 구치소에 들어오는 모든 신문들을 챙겨 꼼꼼히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책벌레로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보내고 있어 놀랍다.

그는 특별한 종교 활동이나 취미생활도 마다하고 있고 독서 뒤엔 글 쓰는 일에 몰두한다.

한편 유씨는 다른 재소자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최근엔 면회를 오는 사람도 없다.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그가 유일하게 접촉하는 사람은 고정원(66)씨다. 고씨는 아들과 부인, 모친 등 일가족 모두를 유씨로부터 잃은 피해자다.

유씨에게 남몰래 영치금을 넣어주며 ‘그를 양아들로 삼고 싶다’는 뜻까지 전해 국민들을 숙연케 했던 고씨는 ‘사형수의 어머니’ 조성애 수녀를 통해 유씨와 교감을 나누고 있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서울을 무대로 부유층 노인과 보도방 여성 등 21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씨.

그는 과감하면서도 치밀한 범행수법으로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피해자를 살해한 뒤 불을 지르거나 사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는 게 그의 스타일.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칼로 숨진 여성의 지문을 도려내는 등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엽기적 수법으로 유명했다.

유씨는 21명에 대한 살해와 공무원자격 사칭, 강도 등 혐의가 인정돼 2005년 6월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참회 눈물 흘린 정남규

냉혈의 연쇄살인마 정남규 역시 유씨와 함께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직접적인 만남은 없었다고 구치소 관계자는 전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정씨는 다른 재소자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며, 상당히 빨리 구치소 생활에 적응했다. 타고난 정씨의 성품자체가 붙임성이 좋다고 관계자는 덧붙였다.

깜짝 놀란 만한 일은 정씨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한 언론사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참회의 눈물까지 흘렸다.

한편 정씨는 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재소자들과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전혀 없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외롭다’ ‘고독하다’는 속내를 자주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천에서 두 명의 초등학생을 목 졸라 죽이는 등 13명의 생명을 빼앗은 정남규. 그는 살인을 유해 체력단련을 하고 범죄 심리에 대한 책까지 독파하며 ‘완전범죄’에 중독돼 있었다.

특히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의 뻔뻔함은 ‘정남규 어록’이 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법정에서 “지금도 사람을 죽이고 싶다. 하지만 죽는 것은 두렵다”고 말해 보는 이를 경악케 한 게 대표적이다.

또 그는 현장검증과정에서 유족들을 향해 발길질을 하고 폭언도 퍼부어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힌 바 있다.

그는 1심에 이어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선고 받았다.


‘GP 총기난사 사건 핵심’ 김동민

일반인 재소자인 유영철·정남규와 달리 김동민(당시 육군 일병)은 군인신분으로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육군교도소 관계자는 “일반재소자와 달리 특수한 상황의 인물로 함부로 근황을 전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김동민은) 건강상의 문제없이 비교적 수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조용한 성격으로 많은 책을 읽으며 안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김 일병은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GP(경계초소)에서 수류탄 1발과 K-1소총을 난사, 8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보통·고등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사형이 확정된 두 사람과 달리 김 일병은 아직까지 법정소송 중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김 일병에게 사형을 구형한 원심을 파기,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상관 살해죄’를 사형으로만 규정하고 있는 군형법 관련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게 그 이유다.

대법원 결정에 따라 김동민의 ‘구사일생’은 실현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정, 사형제 폐지 ‘관심 없다’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이름을 올려 ‘새 생명’을 얻은 당사자들은 오히려 담담하다.

유씨와 정씨는 사형제폐지와 관련된 질문에 ‘전혀 관심 없다’고 답한 것이다.

특히 정씨는 틈날 때마다 일기장에 빼곡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글을 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뒤늦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사회 안팎에서 사형제에 대한 논란이 뜨거울수록 마음의 짐이 무거워지는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