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장 짓지도 않았는데 ‘한숨’

‘대왕 세종’시청률 하락에 문경시 전전긍긍

2008-01-30     윤지환 기자

KBS 새 사극 '대왕 세종'의 시청률 하락에 드라마세트장의 도시 경북 문경시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방적인 퍼주기’란 시민들의 지적과 함께 문경시의회의 반대 등 많은 진통과 논란을 떠안은 채 착공된 ‘대왕 세종’세트장이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드라마가 낮은 시청률을 보이면서 문경시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트장건립을 위해 문경시 관광객 증가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기존의 ‘태조 왕건’촬영장을 철거한 뒤론 관광객이 줄어드는 현상까지 겹쳐 문경시 관계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문경시는 지난해 9월 한물간 지방자치단체의 드라마세트장 건립이 모험이란 시민들의 지적에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문경시는 세종대왕 일대기를 다룬 ‘대왕 세종’은 높은 시청률이 기대되고 문경 관광객 증가에도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득, 60억원을 들여 세트장건립을 밀어붙였다.

전국 대부분의 드라마세트장들이 드라마가 끝나거나 방영 중이라도 시청률이 아주 높지 않으면 관광객들이 특별히 찾지 않는다는 게 최근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문경시는 시청자와 관광객을 상대로 실험이라도 하듯 새 드라마세트장을 짓기 위해 60억원을 들이는 모험을 강행한 것이다.


관광객 증가 기대 악재

지난 5일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KBS사극 '대조영'의 바통을 이어받은 '대왕 세종'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첫 방송에서 시청률 21.2%를 기록하며 전작의 후광을 받고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지난 19일 5회분에선 10%대로 곤두박질쳤고 다른 방송사 사극에 훨씬 뒤지고 있다.

‘대왕 세종’의 시청률 하락이 이어질 경우 잠잠하던 ‘퍼주기 논란’이 다시 지펴질 수 있다는 게 문경시의 분석이다.

이는 2000년 왕건세트장 특수를 다시 한 번 재현, 관광객증가에 도움을 줄 것이란 문경시의 기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문경새재도립공원 내 ‘태조 왕건' 세트장은 올 3월 완공을 목표로 재건축공사가 한창이다.

대형 레미콘차량들이 드나드는 가운데 조선시대 광화문, 동궁,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 이전 왕건 세트장을 부수고 그 자리에 조선시대 궁들을 새로 올리고 있다.


세트장 사업주체 바뀌어

'태조 왕건'세트장은 '대왕 세종'으로 타이틀이 바뀌는 과정에서 사업주체도 바뀌었다. KBS가 52억6000만원, 문경시가 3억원을 부담했던 게 이번 공사에선 문경시 60억원, KBS 5억원으로 책정됐다.

애초 KBS가 사극촬영을 위해 자체예산으로 세트장을 지었지만 몇 년 사이 지자체가 사업비를 대고 관광지로 개발하는 게 관례가 됐다.

‘태조 왕건'세트장 운영의 성공으로 지자체들이 방송사 세트장 유치에 올인 하면서 세트장경쟁이 치열해진 게 그 원인이다.

1999년 41만7000여명이 찾았던 문경새재도립공원은 ‘태조 왕건' 세트장 건립 뒤 순식간에 206만9000여 명으로 관광객이 늘었고, 그 이듬해까지 200만 명이 넘는 입장객 수를 자랑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세트장은 사극드라마가 끝난 뒤 그 인기가 급격히 식어버린다.

‘태조 왕건’이 종영된 뒤 문경새재도립공원의 관광객 역시 100만 명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공원입장료 2100원, 한해 20여억원의 예산으론 세트장유지와 공원보수도 빠듯한 실정이다.

문경시 관계자는 "세트장에 재투자를 하고 있지만 들인 돈만큼의 수입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극드라마가 끝난 뒤 방송사가 재사용하면서 세트장을 유지·보수하는 것을 제외하면 세트장건물은 방치돼 왔다. ‘대왕 세종’ 때문에 ‘태조 왕건’ 촬영장마저 철거되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관광객이 더 줄었다"고 설명했다.

시청률의 주기적 부침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전 부문에 걸친 동반침체가 오래 이어지고, 요즘처럼 경쟁사들의 사극방영이 난립하는 가운데 세트장 건립이 더 이상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미끼가 될 수 없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대왕 세종’ 세트장 건립예산은 문경시의회에서 안건이 두 번이나 부결되는 진통 끝에 통과 됐다. 또 그 과정에서 특정인의 측근이 세트장건립을 반대하던 시의원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경찰수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는 등 후유증을 겪고 있어 시청률하락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대왕세종’세트장이 문경지역 관광객 증가의 견인차가 될지, 재정부담만 늘리는 족쇄가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