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명의도용 범죄 급증
이동전화 가입자 4천만…통신강국 어두운 그늘
2008-01-22 송민수 기자
우리나라 이동전화서비스 가입자 수가 4300만명(2007년 10월 현재)을 육박하는 가운데 가입 시 본인 확인여부를 소홀히 해 명의도용 피해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명의도용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피해사례 중 64.9%가 본인도 모르게 가입됐고, 제3자가 타인명의를 도용해 가입한 경우가 전체의 53.6%로 나타났다. 이 중 44.3%는 가입일로부터 1년이 경과한 후 요금이 청구됐고54.3%는 신용정보회사로부터 채권추심 등 요금 납부 독촉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명의도용 내막과 이동통신3사의 입장을 담아봤다.
잠실에 거주하는 박경수(54세·가명)씨는 지난 2004년 6월 사금융 대출을 위해 인감등본을 제출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서류가 접수 되지 않았다. 그 후 휴대폰 사용에 애로사항이 있어 이동통신 대리점을 방문했는데 본인도 모르게 이동전화가 2005년 5월부로 개통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동통신사에 항의했지만 인감이 첨부됐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무시당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또 다른 피해자 오남성(20대 가명)씨는 2006년 12월경 신용정보회사로부터 요금납부 독촉장을 받았다. 확인 결과 2004년 9월 타인이 본인명의를 도용해 이동전화에 가입 사용한 후 요금 31만원을 미납한 내용이었다.
알지도 못한 요금청구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서울 외각에 위치한 SK텔레콤 영업점을 방문해 타인의 주민등록증으로 가입을 시도해 봤다.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복사해 제출했지만 상품설명에 더 신경 쓸 뿐 신분 확인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후 본인의 주민증이 아님을 밝히고 가입을 취소하자 당황한 영업점 사원은 “생김새가 비슷해 몰랐다. 이런 일 처음이다. 바쁘다보니 확인을 잘 못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접수된 이동전화 명의도용 피해구제 151건을 분석한 결과 대리인이 가입 신청 시 가입자 본인 이용계약서 교부 확인 및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명의도용으로 인한 피해사례 151건 중 81건이 제3자가 도용해 가입했으며, 98건은 본인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가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지인에 의한 도용이 37건, 부모 등 친족관계에 의한 도용도 34건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이는 현행 이용약관상 이동전화 가입 신청 시 신분증 등 구비서류 첨부 및 가입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대리점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가입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신분증 분실 또는 도난으로 인한 명의도용도
11.3%(17건)로 나타나 평소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소비자의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통계는 신고된 사례인 만큼 더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피해사례를 분석한 결과 82건이 채권추심사로부터 요금 납부 독촉을 받은 후에야 명의도용 사실을 알게 됐으며, 가입일로부터 1년 이상 경과 후 알게 된 경우가 67건으로 명의도용 피해 사실을 알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하면 신용정보집중기관 등 관계기관에 이용자의 요금연체정보를 제공하면서 당해 이용자에 대해 본인여부 등 필요한 확인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3사는 실 가입자 본인 여부에 대해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체납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사례 151건에 대해 명의도용 피해자에게 청구된 총 금액(가입비, 단말기 대금, 통신요금 등)은 약 2억원으로, 1인당 평균 132만원의 요금이 발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피해사례 151건 중 69건(45.7%)은 미납요금 및 채권추심이 취소, 중지돼 적정하게 처리됐지만 82건(54.3%)는 이동통신사가 자체 조사 또는 경찰의 수사 결과 후 판단하거나 개별 소송 등을 통해 처리키로 했다.
따라서 실제 도용 여부 등 명의도용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등 해결방안이 쉽지 않아 피해자의 심적, 경제적 부담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명의도용 신고서 일부 내용이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피해사실을 알고 이동통신사에 신고할 경우 ‘수사의뢰 및 개인정보활용 동의서’를 작성하는데 신고서 내용 중 접수 후 일정기간(20일 또는 30일) 신고자(대리인 포함)와 연락이 안 되는 경우 신고를 취하한 것으로 간주하며 재접수가 불가하다고 표기돼 있다.
이는 명의도용 피해가 주로 이통사의 가입자 본인 확인 소홀로 인해 발생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엇보다도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서 연락두절을 이유로 임의로 신고취하로 간주하는 것은 불합리하므로 개선이 절실하다.
범죄예방 제도개선 시급
소비자원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피해 예방을 위해 사업자의 가입자 본인확인 규정준수강화와 함께 대리인가입 신청 시 이용계약서 본인 교부 확인, 요금연체정보 제공시 가입자 본인 여부 확인 절차를 마련토록 관계기관에 건의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조사 자료에 대해 SK텔레콤 측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인 것 같다 완전 무결점을 바란다면 무리다. 소비자원의 자료를 보고 말한다면 어떤 상황인지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KTF 관계자는 “명의도용 발생해 신고가 들어오면 최대한 고객이 요금상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
LG텔레콤 관계자도 “엄청나게 강화됐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없어 보인다. 주민등록증이 본인이 아니고 미성년의 경우 절대 가입할 수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번 자료와 조사에서 나타난 만큼 SK텔레콤을 비롯한 이동통신사들의 반성이 절실하며 소비자들 역시 자신의 개인정보 보호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