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다해 일하는 국회의원 보고 싶다
기획 시리즈 <5> 올바른 보수의 자세
환풍구 추락사고자 책임소재 추궁하느라 바쁜 의원들
사고 생기기 전 안전 관련 입법안 낸 국회의원 왜 없나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 한 주 국회는 국감으로 시끌벅적했다. 세월호법 대치로 사실상 휴점했던 국회가 정상화 되면서 시작된 국감으로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국감기간 중에 터진 판교 환풍구 추락사건도 국회가 활기를 띠는 데 한몫했다. 어이없는 사고에 국회의원들은 국감장에서 모든 이슈를 ‘안전’으로 몰아갔다. 환풍구 사건과 연관된 당사자들은 어김없이 국감장에나와 호된 비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저 국회의원들은 환풍구 추락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동시에 진정한 보수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최근 발생한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가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가 됐다.
여야는 사고의 직접적 관리 책임이 있는 경기도·성남시 국감에서 남경필 경기지사와 이재명 성남 시장을 상대로 사고 책임 소재를 강하게 추궁했다.
여야 의원들은 환풍구의 높이가 법적으로 도로에서 2m 이상 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95㎝에 불과해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된 구조라는 점을 비롯해 시공에서 감리·준공검사까지 문제가 많았다고 질타했다.
또 사고 수습 과정에서 경기도와 성남시의 혼선, 성남시와 이데일리 간 행사의 주체 논란 등을 따졌다.
국회의원이 ‘안정’ 규정 강화·입법했어야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은 환풍구 추락사고자들의 책임소재를 추궁하는 데 바빴다. 특히 국토교통위·안전행정위원회는 다른 사안들은 제쳐 둔 채 국감에서 환풍구 추락사고에만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미건조하게 진행될 이번 국감에서 정치인들은 소위 ‘한 건’ 올릴 소재를 잡은 것이다. 결국 두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국감 기간 내내 환풍구 추락사고에 대해 지적하기에 바빴다. 이를 지켜본 한 시사평론가는 “지금 누가 누구를 지적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저 국회의원들은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또 “국회의원이 뭐 하는 자리인가. 한 명 한 명이 입법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이 오히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입법하고 강화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아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
더 안타까운 점은 국회의원들이 이번 사고를 상대당 유력 대선 후보들 헐뜯기에 이용하는 모습이었다. 정치권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는 구태정치로 반드시 없어져야 할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수세력인 새누리당 의원들이 보이고 있다는 점은 더 안타깝다.
20일 여야 의원들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안전행정위원회 국감에서 안전 문제를 앞다퉈 거론했다. 서울시를 대상으로 한 국토위의 국감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환풍구 안전 문제를 거론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서울시가 주택과 상가의 환풍구에 대해서는 집계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박 시장이 안전을 강조하면서 그런 통계 하나 확보 못 하는 것은 안전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 시장은 “환풍구는 판교 사고 이후 이미 점검하는 중이고 실내 공연장 등도 조사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등 다수 의원은 현장에서 뒤늦게 서울시의 환풍구 관련 통계와 점검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철저한 준비를 하지 못한 새누리당의 질문에 박 시장은 간단한 대답으로 응수했다. 차라리 서울시에 관한 다른 현안으로 국감을 준비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보수·국회의원으로서 책임감 갖자
국감은 ‘국회의 꽃’이다. 피감기관들의 부조리와 잘못을 명명백백하게 따지고 드러낼 수 있는 자리다. 그만큼 전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준비되지 못한 국감은 국민들에게 실망과 짜증만 안겨준다.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국감은 더욱더 그렇다. 과거와 달리 피감기관들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설픈 질문을 던지거나 현안에 대한 이해정도가 낮다면 자칫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국감을 준비하는 국회의원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또 비판을 하기 전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 내가 할 일이 아니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알아야 비판도 할 수 있다.
이번 환풍구 추락사건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난 뒤에서야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평소 국회회기 동안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상임위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했다면 문제점을 찾아내 막을 수 있는 입법안을 냈어야 한다. 그게 바로 국회의원이 할 일이다.
하지만 어느 국회의원 하나 환풍구를 비롯한 안전분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라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불편사항과 문제점들을 둘러보고 개선할 노력을 했어야 한다.
국민들은 TV나 라디오에 출연해 거창한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일터에서 살맛나게 일할 수 있게 해 주는 국회의원을 원한다. 이런 모습의 국회의원, 보수세력이 앞장서 보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