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상무 필수 능력은 아가씨 관리”

서울 북창동 상무 강남 진출기

2008-01-17     서준 프리랜서  

‘역시’란 한 마디만 들으면 돼

한때 룸살롱업계 대세를 ‘화끈함’으로 몰아갔던 이른바 ‘쇼집’, 즉 ‘하드코어 룸살롱’이라 불리는 업종이 있다. ‘화류계 이력’을 다시 써 내려갈 만큼 화려한 나날을 보냈던 서울 북창동식 룸살롱은 1시간 반 동안 손님들 기분을 ‘안드로메다로 관광’시켜 버릴 듯한 질퍽한 서비스와
정통업소보다는 훨씬 싼 값으로 유흥주당들을 유혹했던 곳.

물론 대한민국 ‘쇼집’ 근원지는 서울 무교동과 북창동이다. 경쟁이 치열한 북창동에서 8년 동안 손님들에게 ‘만족’을 주며 꿋꿋이 자리를 지킨 한 영업상무가 제2의 전성기를 맞기 위해 강남으로 건너왔다고 해서 만나봤다.

북창동에서 ‘김미김미’란 업소 영업상무로 8년째 일하며 영역을 굳혀가고 있는 ‘꽁지상무’가 최근 서울 강남으로 진출했다.


“8년간 흔한 ‘진상손님’ 한명도 없어”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은 명성만큼이나 화려한 그의 등장을 기대했으나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그의 첫 마디는 변화된 자신의 생활얘기였다.

“얼마 전 결혼을 했는데 혼자 살 때와는 생각이 180도 바뀌더군요. 타고 다니던 좋은 차를 처분했습니다. 몇 년 전 분양 받아 올해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때문에 살던 집도 정리하고요. 지금은 본가에 들어가 삽니다. 이 일을 시작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젠 버스와 지하철만을 이용하니깐 운동도 되고, 적금도 더 부울 수 있어서 여러모로 좋습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네거리에 1월 20일자로 문을 여는 ‘두바이’는 그가 화류계에 입문하고 처음 대하는 어려움일 것 같다고 긴장감을 표시했다. “8년 전 음악 일을 잠시 하다 술을 마시러 북창동에 간 게 계기가 되어 이쪽에 발을 붙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중형승용차를 선물 받았을 정도로 집안형편이 좋았어요. 아버지 사업이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고 방황하던 중 친했던 룸살롱아가씨 권유로 북창동에서 상무일을 시작 했어요. 시작부터 좋은 고객들을 만나 지금까지 어려움 한 번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번에 강남으로 나서며 이 바닥에서 처음 쓴맛을 볼 것 같다는 생각에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북창동 상권과 강남 상권은 확실히 다르다. 오는 손님들 권역이 완전하게 틀려 일을 바닥부터 새로 시작해야하니 조금 겁도 나고 두렵기도 하단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무얼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인터뷰 내내 그의 전화는 주인보다 더 바쁘게 소리친다.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얘기가 재미있다. “상품가치가 약간 모자란 것 같습니다. 상품가치를 만들어서 2주 뒤부터 일을 시작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손님들에게 배불렀다고 질타를 들을 것 같아요.”

‘빨리 영업하지 않고 뭘 하느냐’고 하는 동료들에게 좀 더 준비를 한 뒤에 영업하겠다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말일지 궁금해 하는 취재진에게 그는 자세히 설명해줬다. “우리같이 룸에서 일하는 상무들도 세일즈맨 입니다. 좋은 상품을 갖고 고객들에서 선보여 만족을 드리는 직업이죠. 그 상품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객들 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이번 달에 개업한다며 아가씨들 라인이 완전 구축되지 않았는데도 당장의 매출에만 연연하면 이 장사는 오래 못합니다. 시간이 걸려도 최고의 모습일 때 보여 드려야죠.”

꽁지상무의 강남진출은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3~4년 전부터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등지를 중심으로 하드코어룸살롱들이 대거 생겨나면서 북창동의 ‘스타구좌’, 즉 매출이 많은 영업상무들은 말을 갈아타기 시작했다. 그 역시 그랬다. 북창동으로 오던 강남의 단골손님들로부터 ‘건너오라’는 요청을 받은 지 오래 됐다. 그렇게 되면 기존 손님들에게 소홀해질까봐 지레 걱정한 너머지 선뜻 시작하질 못했다.

‘꽁지’란 닉네임도 어느 날 자주오던 손님이 서당 가는 학동(學童)처럼 그의 긴 머리를 보고 꽁지란 명찰을 만들어주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명찰은 아직도 그의 보물 1호다. 그는 “제가 일찍 집을 마련하고 이름을 이만큼 알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좋은 손님들 덕분입니다. 2년 간 모은 1억원을 어느 단골손님 권유로 주식에 투자, 더 큰 몫 돈으로 키웠어요.”

‘좋은 곳이 있으니 투자하라’는 말 한 마디에 믿고 선뜻 투자해 운 좋게도 몇 배로 불어난 것이다. 집을 분양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주 오는 손님의 조언을 듣고 좋은 집을 살 수 있었다. 고객들과 쌓아온 ‘특별한 인연’을 은근히 과시했다.

직업특성상 술손님을 상대로 장사하므로 하루에도 크고 작은 잡음들이 생기고 어려움도 겪는다.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않고 끝까지 나가지 않는 손님, 아가씨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손찌검하는 손님, 술값이 더 나왔다며 돈을 내지 않는 손님 등 구구각색이다.

그러나 다행히 꽁지상무는 8년여 북창동생활에서 그 흔한 ‘진상손님’이 한명도 없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골관리비결은 손님입장을 최대한 배려하는 것.

“저는 찾아온 손님이 테이블에서 자면 편하게 주무실 수 있게 이불을 덮어 드리고 친한 손님이 접대를 하고 불가피하게 외상을 그으면 ‘천천히 갚으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한 달에 10만원, 20만원씩 통장에 넣어 줍니다.”


뭐니해도 아가씨 관리가 관건

서울 북창동식 룸살롱에서 일하는 영업상무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아가씨 관리다. 손님관리만큼이나 더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이다. 출근하고 가장 먼저 체크하는 것도 그날 나온 아가씨 현황이다.

영업상무들은 보통 15명 정도의 아가씨들을 데리고 있다. 경력이 오래된 꽁지상무는 60명까지 관리한다.

상무들은 그날그날 ‘출근비’라는 것을 업소에 나오는 아가씨로부터 받는다. 자신이 책임관리하는 아가씨들 숫자만큼 매일 만 원씩 업소로부터 나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아가씨들을 많이 거느리는 상무는 그 돈만으로도 한 달 생활비정도는 벌어갈 수 있다.

이는 상무들 수입과도 직결 된다. 아가씨들이 많은 것은 순전히 상무의 관리능력에서 비롯된다. 두텁게 쌓아온 신용의 결실이다.

하지만 그는 의례적인 상무들 ‘부수입’일 수도 있는 ‘출근비’를 투명하게 자기팀 공금으로 쓴다. “아가씨들 수가 많다보니 한 달이면 600만~700백만 원이 출근비로 모입니다. 저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식구라 여깁니다. 한 식탁에서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 돈을 저 혼
자 챙기겠습니까. 아가씨 생일부터 경조사비, 사람이 많아 자주 못하는 회식비까지 모두 ‘출근비’에서 충당합니다.”

룸살롱 아가씨들은 길면 5년, 짧게는 1년도 안 되는 기간을 이곳에서 머문다. 돈은 벌지 몰라도 떳떳치 못한 직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돈만 벌면 바로 그만 둬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만두면 이곳에 있었던 모든 자취들을 지워버리려고 연락조차 않는 게 부지기수다. 심지어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만 둔다’고 말하는 아가씨들도 있다. 그는 그만 두는 아가씨는 잡지 않고 오히려 선물을 사줘서 보내준다.

“오래전 얘기지만 한번은 아가씨가 10월 달에 결혼을 한다고 3월쯤에 그만둔다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마이킹(선불)이란 게 있었습니다. 가게 쪽에 1백만 원이 깔려 있는 아가씨였지요. 만약 네가 10월에 결혼을 하면 갚아야할 빚(1백만 원)을 축의금으로 생각해 받지 않고 결혼식장에도 가서 한 번 더 축의금을 주겠다고 그냥 보냈죠. 11월쯤 그 아가씨가 다른 곳에서 일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냥 믿고 기다렸더니 얼마 뒤 전화가 왔습니다. ‘잘 지내느냐?’고 물으니깐 대뜸 제 통장에 ‘1백만 원을 넣겠다. 미안하다’며 다른 유흥업소에 다녔는데 볼 면목이 없어 찾아오지 못했다는 겁니다. 얼마 후 제가 일하게 된 강남의 두바이룸살롱개업 때 아가씨 몇 명을 데리고 같이 일하자고 찾아오더군요.”

룸살롱 영업상무들도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이 바닥에 발을 오래 붙이지 못한다. 젊었을 때 잠시 일하는 직업쯤으로 치부해버린다. 대부분 ‘반짝 손님들’을 받고 그만둘 생각을 한다. 따라서 모르는 손님들이 오면 술값에 바가지를 씌우며 언제 다시 또 보겠느냐는 식으로 대한다.

손님들도 어떻게 하면 더 싸게 술을 먹을까, 외상술을 주나 하는 식으로만 영업상무를 대하는 이들이 많다. 영업상무들과 손님간에 오랜 교
분이 이뤄지기 힘든 이유다.

침체경기로 유흥업소들도 ‘양극화 시대’를 맞고 있다. 줄지어 쓰러지는 도미노현상이 유흥가에도 생겨나고 있다. 새로 문을 연 업소들이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는다.

그러나 ‘어렵다’고 말하는 업소들은 대개 작은 업소들이다.

대형업소들은 늘 호황이다. 그래서인지 컨베이어벨트처럼 돌고 도는 정형화된 서비스로 손님들을 대하는 지금의 룸살롱들에서 예전 같은 훈훈한 정을 느끼지 못한다.

“8년 동안 북창동에 있으면서 더 이상 올라갈 산이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저를 있게 해준 북창동을 영원히 떠나는 게 아닙니다.
강남에 있는 높은 산들 대열에 한번은 오르고 싶습니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고 북창동업소 수익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왕에 시작한 룸살롱 영업상무이니만큼 강남으로 가서도 많은 손님들에게 ‘역시 꽁지야, 너는 마인드가 돼서 어디로 가든 성공하는구나’하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의 기본영업 철칙은 ‘주당들은 술값을 깎아주지 않고 제값을 주더라도 업소 문을 나설 때 미소짓게 하는 술집엔 반드시 또 온다’는 것. 그래서 손님이 인상 찌푸리고 룸에서 나오는 모습은 눈뜨고는 못 본다고 한다.


#‘하드코어’ 웨이터 인터뷰
하드코어 술집들 ‘화끈한 서비스’ 인기

서울 무교동과 북창동을 필두로 생긴 ‘하드코어’ 업소는 이젠 좀 더 진화된 모습으로 강남에서 성업중이다. 15억원을 들여 꾸몄다는 두바이 룸살롱의 인테리어는 소문대로 고풍스럽다. 각 방마다 독특한 테마로 손님맞이에 바쁘다.

신림동에서 룸 지배인으로 일하다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경력 1년의 웨이터를 만나 봤다. 그가 업소에서 쓰는 이름은 ‘진영’, 자신의 본명 그대로란다. 유흥업소사람들이 언론에서 인터뷰를 신청하면 ‘피해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대체로 꺼린다. 그는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더라도 상관없다며 강남 ‘하드코어’ 업계에 대해 들려주었다.


-하드코어식 업소가 강남으로 대거 옮기는 이유는?
▲찾는 손님들의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하드코어룸은 대리, 과장급 사원들만 찾는 곳이 아니다. 요즘은 임직원들도 많이 찾는다. 싼 술값에다 깔끔하고 화끈하게 놀고 가는 시스템이 오랜 술자리를 싫어하는 요즘의 술자리문화와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찾는다. 수요층이 그만큼 크게 넓어졌다는 소리다.

-손님들이 많은 만큼 웨이터수입은 얼마나 되나?
▲기본급 50만원에 손님들이 주는 팁이 주수입이다. 업소마다 기본급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한 달에 가장 많이 번 금액은 500여만 원이다. 손님이 없을 땐 한 달에 200여 백만 원 정도다. 웨이터들의 경우 대다수가 300만~500백만 원을 버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쉽게 보고 뛰어들었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다. 힘든 직업 중 하나다.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서울 북창동식 룸살롱은 1시간 30분 안에 ‘화끈한 서비스’를 펼친다. 손님입장에선 불만이 있고, 아가씨입장에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웨이터들에게 불만이 쏟아진다. 욕설을 해도 손님들이야 ‘한번보고 말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끝난다. 그러나 아가씨 중 친한 동생들도 있는데 아무리 손님이라도 그들 앞에서 욕을 먹으면 솔직히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한다. 우리들 하는 일이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 손님들 스트레스를 받아주는 서비스업이다. 그럴 땐 웃어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