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수뇌부가 날 죽이려 한다”

‘한화그룹 김승연 사건’표적수사 주장 파문

2008-01-09     윤지환 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맨 처음 수사했던 경찰관이 ‘괴씸죄’로 보복성 표적수사를 당해 누명을 썼다고 주장,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오모 경위는 지난 3일 오후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무궁화클럽(www.police24.or.kr)의 ‘열띤 토론’ 게시판에 마련된 `’현장의 목소리’ 코너에 “수사 경찰관이 250일간 표적수사를 당하고 있습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오 경위는 지난해 3월 한화 김승연 회장이 조폭을 동원, 보복폭행 사건을 저질렀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처음 수사를 벌인 인물. 그는 상부의 압력으로 수사를 멈춘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세한 내막은 베일에 가려져 왔다.

이후 이 사건과 관련,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 가운데 일부 내용은 사실로 확인되면서 홍영기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간부들이 옷을 벗었다.

오 경위는 “이 사건 때문에 수뇌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지금까지 표적수사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유모 한화그룹 고문과의 회동, 전화통화 등으로 연루의혹을 받아 곤욕을 치른 바 있어 그의 주장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오 경위에겐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 속을 들여다 본다.

김 회장 보복폭행사건 때 오 경위는 사건을 처음 수사한 경찰로 알려지면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적 있다. 그를 둘러싼 의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떻게 사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게 됐는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왜 사건수사를 중도에 접고 다른 경찰서로 사건을 넘기게 된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해 오 경위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때 오 경위는 본지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신고를 받고 사건을 조사하긴 했지만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도 전에 사건에서 손을 땠으므로 김 회장 사건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사건이 왜 남대문서로 넘어갔는지 모르지만 상부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이므로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경찰수뇌부를 향해 정면으로 포문을 연 것이다. 주장하는 바를 들어보면 대한민국 경찰이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경찰수뇌부는 그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뇌부의 이상한 음모

오 경위는 “이택순 경찰청장의 뜻과 다르게 김 회장 관련첩보를 입수하고 적극 수사한 죄로 수뇌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 나의 비리를 밝혀내 옷을 벗기려고 경찰청 감찰계 등이 동원됐다”고 폭로하면서 “하지만 나는 강직하게 악바리처럼 수사만 했지 어떤 비리와도 타협하지 않았으므로 감찰계에서 허탕을 치고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 역삼동에 있는 공무원이 개입된 기업형 안마시술소를 수사하라는 청장 특명을 받고 조사에 나서 업주처벌과 영업장 문을 닫게 했다.

이와 함께 최대 액수인 성매매 수익 10억원 몰수와 40억원의 탈세를 추징토록 했다”고 밝혔다.

오 경위는 바로 이게 함정이었다고 했다. 이때 적발된 안마시술소 건물주 등이 오 경위를 음해하려는 목적으로 서울지방경찰청 감찰계, 수사 2계에 투서했고 오 경위는 졸지에 내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열심히 일한 게 오히려 죄

오 경위는 수뇌부의 음모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수뇌부는 이런 상황을 이용, 업소의 실질적 관련자인 A씨 등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는 게 오 경위의 주장이다.

그는 “A씨는 B경무관의 비호 아래 이 국무총리실에 파견된 박모 경감과 공모, 내가 평소 알고 지내는 유흥업소로부터 향응접대와 공로주식을 받아 월 수 천만원씩 챙기고 뒤를 봐주는 경찰이라고 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소설 같은 이야기를 첩보형식을 빌어 서울지방경찰청
수사 2계, 폭력계 등에 제공했다. 이 두 부서에서 나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리자 수뇌부는 경찰 최고 수사기관인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2개 전담팀을 만들어 나를 집중 수사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특수과에서 오 경위와 알고 지내는 업주 2명을 선정, 그들의 관련업소 10곳에 대해 국세청 직원 2명을 파견 받아 탈세 등 약점을 잡고 “탈세혐의를 봐줄 테니 오 반장에 대한 비리를 불어라”고 회유하기까지 했다는 것.

경찰의 회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특수과는 업주들의 탈세혐의를 미끼로 한 1차 회유에 실패하자 이들 유흥업소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계좌추적 등 수사를 통해 ‘오 경위에 대한 비리를 불면 봐 준다’고 2차 협박을 가했다고 오 경위는 밝혔다.

오 경위는 자신이 올린 글 끄트머리에 “8개월간 표적수사를 부당하게 당하다 보니 조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사표를 낼까도 몇 번이고 고민했었다”고 고뇌를 털어 놓으며 “그러나 동료들은 ‘특수과에서 수뇌부 뜻을 거부할 수 없어 표적수사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수사하는 것이고,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고 위로하고 있지만 답답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부하 짓밟는 경찰청장

그는 이어 “A씨는 지금도 불법유흥업소를 여러 군데 운영하고 있다. 하루빨리 특수과는 중심을 잡고 올바른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나는 청장님이 부하직원들을 가을날 떨어진 낙엽 밟듯이 짓밟아버리는 현실에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오 경위는 “범죄자로부터 덮어 씌어진 혐의를 밝힌 후 나는 조용히 경찰조직을 떠날까 한다”고 착잡한 심경을 드러내며 글을 마무리했다.

오 경위는 현재 출근도 하지 않고 외부와 연락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는 오 경위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그에게선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한편 수사를 맡은 특수과 한 관계자는 “그것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 당사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지금은 바빠서 더 이상 통화할 수 없다. 추가 질문은 다른 쪽으로 문의하는 게 좋겠다"고 말을 돌렸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해 말 오 경위를 입건, 뇌물공여와 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한 수사를 벌여왔다. 그러나 경찰은 이와 관련된 다른
인물들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아 핵심관련자가 해외로 달아나는 일이 생겼다.

이에 경찰이 고의로 관련자를 도망치도록 문을 열어놓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오 경위가 뇌물을 주도록 협박했다'고 진술한 유흥업소 주인을 긴급체포하고도 석연찮은 이유로 다시 석방, 불구속수사하고 있는 점 역시 의혹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