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정치이야기-12] 세월號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들

2014-10-20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유병언, 김영오, 박영선, 김현 그리고 가토와 박근혜
朴 대통령·검찰, 산케이 신문 전략에 말려들다

2014년 4월 16일, 여느 때와 같이 스마트폰에서는 신호음을 내면서 뉴스특보가 뜨고, 언제나 뉴스특보는 특보가 아닌 것이 더 많았다는 기억력으로 무시한 기억이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도 그런 뉴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똑 같은 뉴스특보가 TV를 통해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이 생생하게 중계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2001년 9월 11일의 뉴욕 쌍둥이 빌딩에 여객기가 충돌하는 장면이 오버랩 됐다.

911은 처음에는 영화의 한 장면이겠거니 생각했지만 현실이었다. 세월호는 차라리 히어로가 나타나 승선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을 구출해내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 펼쳐지기를 바랐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히어로는 역시 현실세계에는 없었다. 국가공권력은 무기력했고 비겁했으며, 대한민국 관료는 그냥 관피아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294인은 294구의 주검이 되어 뭍으로 나왔다. 아직도 10인은 실종된 채이다. 단원고 학생이 5인, 단원고 교사가 2인, 그리고 일반인 3인이다. 사고 당일 구조됐던 단원고 교감 강민규씨는 유서를 통해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가족과 학교, 학생, 교육청, 학부모 모두에게 미안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며, 죽음으로써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

팽목항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분, 사고 수습을 하던 경찰관도 이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으며, 실종자 수색을 하던 잠수사도 사망하는 2차 사고를 겪었다. 경찰과 검찰로부터 목숨 값을 담보로 쫓기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뛰는 경찰, 나는 검찰을 잘도 따돌렸나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일각에서는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지 실제로 유병언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면서도, 그의 죽음에 대해 미스터리가 많다며 국가권력기관이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북한의 소행이라는 말로 나올 법한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사회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준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사회에 준 충격은 가히 메가톤 급이다. 우리사회를 근본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으로 수렴되고 있는 중이다. 지방선거가 끝나면서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세월호특별법’은 7.30 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정치권의 핫이슈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전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 즉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적폐인 관피아 문제와 정경유착, 세월호 참사 당시의 초동대처에 대한 명확한 책임의 추궁이 우선적인 과제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나도 당연한 ‘세월호특별법’ 제정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침을 거듭했다. 우리의 인생사, 우리나라의 정치적 현실과 우리나라의 사회상이 축약되어 나타난 것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의 과정이다. 먼저 세월호 유가족의 한 명인 김영오씨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해달라며 46일 동안 단식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가정사가 파헤쳐지며 인간으로서의 모멸감도 맛보았고, 2차 3차의 피해를 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는 가장 뜨거운 이슈가 세월호 유가족, 그 중에서도 김영오씨를 만나는 것이었다.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은 김영오씨를 만나 두 손을 꼭 잡고 위로하였고, ‘세월호특별법’은 우리사회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이슈가 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권을 한 손에 쥐었던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세월호특별법’ 정국에서 가장 극심하게 부침한 정치인이다. 부침이라기보다는 침몰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녀가 민주당의 제18대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을 들러리로 세우면서 비상대책위원장격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라는 자리에 앉아서 인터뷰를 할 때는 그야말로 상종가를 쳤다. 일약 대선후보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면서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한 스포트라이트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박영선 원내대표보다 극적인 또 한 명의 여성 정치인이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의원이다. 내가 일고 있는 김현의원은 누구보다도 의협심이 강하고 불의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는 국회 상임위가 안전행정위원회였고, 따라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충 하나하나를 듣고 해결하려고 했던 몇 안 되는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그러한 의협심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정치생명은 그렇게 끝이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폭행사건에 연루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대표들은 피의자가 되어서 법정에 서야하는 고충을 떠안았다.

더 극적인 이야기는 일본의 보수우익 3류 신문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타츠야에 의해서 제기됐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박근혜에 대해서 감히 연애 운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세월호 희생자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잃어버린 7시간, 대통령에게는 잊혀 져야할 7시간인지 모르겠으나, 산케이신문이 한국의 국격을 폄하하고 왜곡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취재하나 없이 기사화했던 것이다.

원래 가토 지국장은 사회부기자 출신으로 그러한 소문이나 루머를 기사화하는 데 특별한 자질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의 3류 신문으로서는 손색없는 기사임에 틀림없겠으나 소재를 한국의 대통령으로 한 것은 한국에 대한 명백한 비아냥이다. 그런데 한국의 검찰은 그를 기소함으로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을 자초했다. 산케이신문의 전략에 말려든 셈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거론했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 얽힌 세월호 관련 이야기들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으려하고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통해 후세에 남기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무능하고 무책임인 관피아를 척결하고 국민들을 위한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이제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시한이 열흘 남짓 남았다. 294, 그리고 10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국회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야 할 시기가 점 점 다가온다.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