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살포를 둘러싼 논란…막아야 하나 그냥 둬야 하나

정치권 해법도 엇갈려 '고민'

2014-10-20     이지혜 기자

‘패륜아 김정은’ ‘30세 철부지’ ‘김씨 정권 타도’ 내용
‘저지’ 연천주민 vs ‘살포’ 탈북단체 충돌 우려되기도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대북전단(이하 삐라)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북한이 삐라 살포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겨우 진전되고 있는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탈북단체들이 살포하는 삐라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정부는 “민간단체를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북한은 직접 삐라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으로 불안해진 것은 연천 주민들이다. 이제는 연천 주민들이 나서 삐라 살포를 저지하고 있다. 그러나 탈북단체들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삐라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을 [일요서울]이 정리해봤다.

탈북단체가 진행하는 삐라 살포에 북한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무기로 정부에 삐라 살포 자제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자 결국 북한은 직접 총을 꺼내들었다. 지난 10일 오후 4시께 두 차례에 걸쳐 풍선에 매달린 삐라를 향해 수십여 발의 총격을 가한 것이다.

北 “체제에 대한 도발 단호한 보복조치 있을 것”

북한이 삐라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지난달 중순부터였다. 지난달 13일 북한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삐라 살포를 중지하면 대화의 문은 자연히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어 23일에는 보복조치까지 예고했다. 이날 북한은 “삐라 살포는 우리의 존엄과 체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발로 북남관계를 최악의 파국으로 몰아넣는 극악한 망동”이라며 “온 겨레와 함께 준열히 규탄·단죄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경기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삐라 살포는 동족의 성의가 안중에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결국 삐라를 향한 총격을 가했다.

이후에도 북한은 계속해서 삐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북측은 “우리에 대한 심리전으로 강행된 삐라 살포놀음은 미국과 남조선당국의 배후 조종과 묵인 하에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강행된 정치적 도발”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북남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며 정부 측에 삐라 살포 제재를 계속해서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측의 요구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간단체에서 진행하는 사안인 만큼 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규제할 수 없다면서도 필요하다면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북한의 ‘보복조치 예고’ 당시 정부는 “신중하게 행사를 검토해달라고 설득하는 이상으로 제한하거나 물리력으로 자제시키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민간단체의 활동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면서 “상황 파악 등 관계부처 협의는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전단 살포와 북한의 반응에 관한 정부의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같은 입장은 북한의 대응사격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정치권에서 삐라를 둘러싸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야당은 “병력을 동원해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야 한다”고 밝힌 반면 여당은 “자유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민간에 의해 자유로운 결정으로 이뤄지는 행동”이라고 일축했다.

삐라를 둘러싼 갈등은 남과 북, 정치권 뿐만이 아니다. 연천주민들과 탈북단체 간에도 갈등이 싹텄다. 앞서 북한의 공격으로 인해 피해를 본 적이 있는 연천 주민들이 북한의 총격 이후 “불안해서 못 살겠다”며 삐라 살포 저지에 나선 것이다. 경기 연천군 횡산리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 10일 북한의 총격 당시 인근 주민들은 모두 대피소로 대피했다. 당시 갑작스러운 총격 소리와 대피 명령으로 인해 놀란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해서 못살겠다” 연천주민 트랙터 봉쇄까지

횡산리 김학용 이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주민들이 지금도 불안에 떨고 있다”며 “정부에서 대북전단 살포 제재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김 이장은 “당시 대피하면서 위협을 많이 느꼈다”면서 “대북전단을 계속 날린다면 북한에서 또다시 총격을 가할 위험이 있다. 그로 인해 비상이 걸리면 주민들은 일도 못하고 대피해야 한다.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단 살포를 위해 우리 마을로 온다면 물리적 행동은 못해도 차량 진입을 못하게 하는 식으로 방어를 할 것”이라며 “정부는 북한 총격이 재발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탈북단체 측은 “북한 인민의 알 권리를 위한 행동”이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삐라를 살포한다는 입장이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는 “탈북자들은 고향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유북한운동연합 측도 “북한 주민에게 사실과 진실을 전하는 평화적인 대북전단 보내기”라고 주장했다.

결국 연천 주민들은 지난 11일 삐라 살포를 위해 방문한 탈북자 단체를 막아섰다. 주민들은 길에 트럭과 트랙터를 세워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으며 결국 탈북자 단체 회원들은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삐라의 내용은 무엇일까. 북한의 총격이 있던 지난 10일 탈북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북으로 날린 삐라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 비판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정권을 타도하고 노동당을 해체해 개혁과 개방을 하면 잘 살 수 있다” “고모부까지 처형한 사악한 패륜아 김정은” “밥 한 끼가 새로운데 철없는 30세를 하루아침에 원수와 장군님으로 모신다” 등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비난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김정은 정권 적개심 확산 우려 부담 커졌다

사실 삐라에 이러한 내용이 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한도 매번 삐라 살포 시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직접 무력으로 응수한 적은 없었다. 유독 지금 시기에 살포된 삐라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북한이 대북전단의 위협을 에볼라 바이러스 수준으로 여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지난 11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 몇 명만 전단을 봐도 북한 사회로 급속히 퍼져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적개심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적개심이 커지면 결국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비닐봉지로 만든 풍선 안에 수소를 채워놓고 삐라 등을 담은 꾸러미를 매달면 3000m에서 5000m 상공까지 올라가고 바람을 제대로 타면 3시간 만에 평양까지 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우려가 사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베넷 연구원은 “북한의 이번 총격은 한국 정부가 민간단체들의 전단 활동을 막도록 하고 대북 유화정책을 펴야 한다는 여론 조성을 위한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