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조폭 등 얽혀있는 비리종합세트”
2007-12-05 윤지환
2천억원대의 사설경마업을 한 8개 조직경마사범들과 이들로부터 돈을 받고 경마정보를 흘려준 일당이 무더기로 검찰에 걸려들었다. 적발된 이들 중엔 한국마사회에서 활동했던 전직 기수와 현직 경찰관 등도 들어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검사 김학석)는 지난달 28일 사설경마조직 총책 김모(44)씨, 한국마사회 소속 기수 강모(31)씨, 과천경찰서 소속 경찰관 박모(40)씨 등 19명을 한국마사회법 및 뇌물수수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 나머지 4명은 전국에 지명 수배 됐다.
사설경마 폐해는 수년 전부터 지적돼 왔다. 하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지능적 수법을 동원, 단속이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설경마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수년째 사설경마와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오고 있는 한 사업자로부터 충격적인 실상을 들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설경마는 뿌리 뽑기 힘들다고 본다. 수요가 넘쳐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존의 것에서 조금만 업그레이드 시켜 시스템을 돌리면 금방 경마꾼들로 넘쳐나는 게 사설경마시장이다.”
기자가 만난 사설경마업자 김모(34)씨 설명이다.
김씨는 2001년부터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 왔다. 벌어들인 돈은 2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많이 번 게 아니라는 시각이다. 다른 업자들은 200억원을 한 달 만에 버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수년간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통해 벌어들인 돈보다 8개월간 사설경마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훨씬 많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초 ‘하우스’를 운영해오다 경찰에 걸려 중국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지난 6월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사설경마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이 사업은 자금회전이 빠르고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챙길 수 있어 하다보면 다른 사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업자들은 이것 외엔 다른 일을 할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설경마에 대해 ‘비리 종합세트’라고 규정했다. 이 사업엔 직장인, 고위공무원, 경찰, 조직폭력배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사설경마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하나는 휴대폰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명 ‘하우스’를 통하는 것이다.
휴대폰 등을 이용하는 방법은 가장 보편적인 사설경마의 유형으로 경마장 또는 장외발매소에서 유사마권(마권번호를 적을 수 있는 메모지 등)을 통해 적중 때 배당금을 주는 형태다. 이땐 비교적 소액으로 실제 현금이 건네진다.
하지만 돈이 직접 오가는 것은 단속 위험에 노출돼 지금은 계좌이체를 하고 휴대폰 등을 이용, 마권번호를 부르고 경마가 끝난 뒤 정산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쓴다. 이런 방법으로 한 번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거래한다는 것.
수 천 만원 잃고 또 도박
김씨는 “하우스는 일반사무실, 오피스텔, 아파트 등에 모여 베팅을 하는 형태다. 요즘엔 단속이 심해 하우스 운영을 게릴라식으로 많이 한다. 경주결과는 현장에 있는 행동책의 전화, 인터넷, 실시간 중계방송 등을 통해 접수한다. 그 결과에 따라 배당액을 배분한다”고 말했다.
과거 사설경마는 은행의 계좌이체 등을 통해 배당액이 지급됐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다보니 큰 액수가 터질 경우 업주가 돈을 주지 않고 달아나는 일이 생겨 지금은 현장에서 현찰이 바로 오가는 경우가 많다. 업주들은 하루에 수 천 만원에서 10억원대에 이르는 돈을 현장에 깔아놓고 하우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사설경마꾼들이 하루에 수 천 만원을 잃는 경우는 허다하다. 배팅액수에 제한이 없다보니 수억원대 돈을 일주일 만에 탕진하는 이들도 하나 둘 아니란다.
김씨는 “사설경마는 거의 경찰과 얽혀 있다. 이 사업은 마사회 내부인사와 경찰인맥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마꾼들 배팅액수에 맞추다보면 업자들도 거금을 끌어올 능력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사설경마는 마사회의 내부정보와 경찰의 단속정보를 제공하는 사람과 돈을 회전시키는 인력, 경마꾼들을 끌어오는 일손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경우 사복을 입고 차를 가져오면 트렁크에 현금을 실어 준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거래가 사설경마업계에선 비일비재하다. 경찰이 손님으로 가장해 하우스로 찾아오면 업자들은 경찰의 자동차열쇠를 받아 그의 트렁크에 돈 가방을 실어 준다. 이렇게 전달되는 액수는 2000만원 쯤 된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김씨는 또 “경찰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으려면 힘들다. 때문에 업자들은 대부분 조폭을 통해 해결한다. 업자는 자금력을, 조폭은 정보력을 동원하는 연결구조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설경마사업을 하다보면 유명패션디자이너, 연예인, 사업가 등을 많이 알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친분 있는 조폭들을 통해 하우스로 안내된다. 내가 아는 한 패션디자이너는 두 시간 만에 3400만원을 잃고도 다음날 또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해 놀라움을 더해 줬다.
사설경마 근절은 이렇게
‘사설경마를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란 질문에 “방법은 당연히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모든 사설경마는 경마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 거래가 이뤄진다. 이것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면 된다. 실시간 중계는 전화중계와 인터넷중계 두 가지가 있다. 전화와 인터넷 베팅은 아직까지 많은 금액이 몰리지 않고 있다. 마사회가 전화·인터넷 베팅을 없애 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실시간 중계가 금지되면 사설경마는 정보부족으로 운영이 힘들어진다는 것.
김씨가 가장 추천하는 사설경마 근절방법은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제도 운영이다. 사설경마 신고자는 신원보장을 철저히 해주는 것은 물론 포상금은 현장 압수된 거래액에서 일정율을 떼어주는 식으로 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거래액이 크면 클수록 포상금을 노린 신고가 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