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살인사건 추적
2007-11-15 윤지환
수원 장안구 송죽동 68번지 경기과학교육원 앞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3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지난 9월 19일 새벽 4시 35분경 자신의 차 안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 남성은 발견당시 자신의 차량 뒷좌석에서 발목이 묶인 채 숨이 끊어져 있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취객을 노린 퍽치기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추가로 확인된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아 계획된 타살로 보고 수사방향을 돌린 상태다. 또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 정체불명의 제보자 신원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119상황실로 익명의 제보자가 전화를 걸어와 사건을 신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남성은 상황실 직원의 물음에도 자신의 신분이나 연락처 등을 밝히지 않아 사건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이 남성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주력하는 한편 CCVT 등 각종 단서들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위치한 유흥가인 일명 ‘박스’ 안에서 술에 취한 6명의 남성이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술집 부근에서 잔치국수로 뒤풀이를 한 이들은 전날인 18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 3시 30분까지 3차에 걸쳐 술자리를 이어가느라 대부분 만취해 있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마지막 남은 세 명은 대리운전 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대리운전기사가 나타나자 두 명은 아직 대리운전 기사가 도착하지 않은 권모(31)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권씨는 다른 동료들이 모두 집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후 혼자 자신의 차량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것이 권씨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권씨는 자신의 차량 안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채로 발견됐다. 이로써 이날 그와 작별인사를 한 동료들은 그와 영원한 작별을 고한 셈이 돼 버렸다.
도대체 권씨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권씨의 사망은 계획된 범행
경찰에 따르면 권씨는 자신의 차량인 흰색 토스카 뒷좌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수원 중부경찰서 강력 1팀의 심상우 형사는 “안으로 잠겨있는 차문을 열어보니 차 안에는 각종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권씨는 뒷좌석에 누운 상태로 발이 묶인 채 숨져 있었다”며 “차 창문에 썬팅이 짙게 돼 있어 안을 전혀 들여다 볼 수 없는 상태여서 차문을 열기 전에는 차 내부 상태를 확인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심 형사는 이어 “사건 초기에는 이번 사건을 퍽치기 등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으나 권씨의 손이 아니라 발이 묶여 있는 점, 각종 서류들이 차안에 널려있었던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CCVT에 찍힌 정체불명의 차량이 권씨의 뒤를 쫓았던 점 등을 미루어 계획된 범행이라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 형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차량은 검정색 소나타2인 것으로 파악됐으며, 권씨가 차를 타고 움직이자 곧바로 그의 차량을 미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과수의 부검 결과 권씨는 우측 6번 갈비뼈가 골절된 상태였으며 외부 충격으로 인한 간파열상을 입었다. 이를 미루어 권씨는 심한 폭행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권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 의해 목이 졸려 사망한 것이다.
미스터리한 권씨의 죽음
또 CCVT에 찍힌 쏘나타2 차량을 수배한 결과 이 차량은 도난 차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심 형사는 “권씨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권씨는 전혀 범인들에게 저항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옷을 살펴보면 옷깃하나 구겨진 곳 없고 흙이 묻은 곳도 없다. 이를 미루어 누군가의 급습으로 일격에 제압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권씨는 법무사 사무장으로 근무하면서 유능함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는 능력뿐 아니라 성격도 좋아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원한 살 일도 전혀 없었고, 그가 맡고 있던 직무역시 이해관계에 얽혀 원한 살 내용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심 형사는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권씨가 계획적으로 타살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주변 관계를 조사해보면 타살 원인이 불명확해 혼란스러운 상태”라며 “범인들은 권씨의 차량이 발견된 곳에서 멀지 않은 한 성당 앞에 쏘나타2 차량과 권씨의 지갑 등을 버리고 갔다. 하지만 지갑 속에는 현금이 없었다”고 말했다.
실마리는 ‘목소리’
이와 함께 경찰은 현재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119상황실로 걸려온 한통의 제보전화를 주목하고 있다. 한 남성이 이날 새벽 4시 25분경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와 사건을 신고했으나, 경찰은 이 남성이 사건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 남성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이 이 남성을 의심하는 근거는 권씨의 차량이 낮에도 안을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짙게 썬팅이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량 내부 상태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또 제보자의 연락처와 신원을 묻는 상황실 직원의 물음에 대답하길 꺼렸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미루어 타지에서 온 인물로 보인다는 점도 미심쩍다.
경찰이 이 남성의 목소리를 국과수에 의뢰한 결과 이 남성은 경상북도 출신으로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인 것으로 확인됐다.
심 형사는 “현재 범인은 2인 이상인 것으로 보이며 권씨의 가방과 지갑을 가져갔다”며 “이를 미루어 권씨에게 금전 이외에 또 다른 무엇인가를 강탈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결정적 단서를 기대할 수 있는 몇 가지 추가 검사를 국과수에 의뢰해 놓은 상태로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범인검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