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재우 형제 재산싸움 내막
2007-11-09 이수영
대통령 재임 시절 기업으로부터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2629억의 추징금을 선고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친동생과 재산 다툼을 벌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3부는 지난 6월 동생 노재우씨를 상대로 한 노태우 전 대통령 명의의 탄원서를 접수받고 5개월째 내사에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이 제출한 탄원의 핵심은 “조카 호준씨 명의로 된 회사가 본인 것이라며 추징해 달라”는 것이다. 2629억의 추징금 중 80%인 2113억을 납부한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나머지 추징금을 완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비자금’의 120억원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동생 노재우씨의 용인 땅이 문제의 핵심. 이 땅을 놓고 소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형제의 다툼은 ‘비자금 은닉’이라는 새로운 의혹과 더불어 흥미진진하게 진행 중이다.
검찰이 노태우(74) 전 대통령의 재산 다툼에 대한 내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음이 알려진 것은 지난달 27일. 동생 노재우(72)씨가 노 전 대통령이 건내준 비자금 120억원을 종자돈으로 매입한 용인 땅 1만 6000여평(5만2800㎡)을 둘러싼 갈등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달 10일 노재우씨 부자 소유의 용인 소재 물류회사와 관련 금융기관 네 곳을 압수수색 했으며 노재우씨와 아들 호준씨를 출국금지 조치했다고 밝혔다.
재우씨 회사의 진짜 주인은?
120억 비자금을 둘러싼 두 형제의 갈등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88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은 동생 재우씨에게 비자금 70억원을 전달하고 이어 91년, 50억원을 추가 전달했다.
노재우씨는 이 자금 중 일부로 89년 부터 4년간 문제의 용인 땅을 매입해 냉동, 냉장 물류회사를 설립하고 냉동창고 두 동을 건설했다. 97년 대법원에 의해 노 전 대통령이 건넨 총 120억원이 ‘노태우 비자금’으로 추징대상이라는 판결이 났고, 2001년 검찰은 재우씨의 회사 지분 30%를 압류조치 했다. 그러나 검찰은 비상장 주식에 대해 인수자가 없을 것으로 보고 실제 경매 처분하지 못한 상태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이 회사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준 돈을 종자돈으로 부지와 본사를 마련한 만큼 추징금 완납을 위해 회사를 매각해야 한다는 것. 재우씨측은 “형이 준 돈은 부모님을 모시는 대가로 준 것으로 추징금을 낼 의무가 없고, 회사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된다”며 맞서고 있다.
검찰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은 ‘노재우씨가 문제가 된 용인 땅 일부를 아들 호준씨에게 헐값에 팔았다’는 의혹이다.
“아들 회사에 헐값 매각”
지난 6월 노재우씨 회사의 전 사장 박모(65)씨가 폭로한 진정서에 따르면 “노재우씨가 이사진의 동의 없이 회사소유의 용인 땅 일부를 아들이 100% 주주로 있는 유통회사에 헐값에 팔아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되어있다.
검찰은 당초 노재우씨와 아들 호준씨의 배임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직접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노재우씨 부자가 추징금을 빼돌리려 한다는 새로운 의혹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봤을때 재우씨 측이 추징대상인 노 전 대통령의 돈으로 회사를 세운 뒤 지분 처분 방식으로 추징금 집행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재우씨의 아들 호준씨의 유통회사를 압수수색하고 기각된 체포 영장을 재발부 하는 등 수사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임액수 160억” vs “많아야 20억”
호준씨의 배임 의혹을 처음 제기한 박모씨는 검찰 조사에서 “2004년 4월 노재우씨 회사의 부지를 떼어 호준씨의 회사를 설립할 때 재우씨가 시세보다 싼 가격에 땅을 팔아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측은 “220억원에 이르는 땅을 56억원에 팔았다. 배임액수가 16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카인 호준씨 측은 “배임 사실이 없으며 당시 땅값이 70~80억원대에 불과하다. 많아야 10~20억을 시세차익으로 챙겼을 뿐이다”라며 맞서고 있다.
특히 노재우씨 측 변호인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퇴직한 박씨가 퇴직금 외에 공로주로 회사 전체 주식의 10%에 해당하는 100억원을 요구했고 응하지 않자 노태우씨를 찾아가 현재 500억 정도인 땅의 시세를 2배 이상 부풀려 말한 것으로 안다”고 밝혀 박씨의 폭로 의도를 의심했다.
#추징금 집행률 0.01%
두둑한 배짱으로 ‘용서 받지 못한 자’의 굴레를 지고 사는 이들이 태반이다. 범죄 행위의 대가로 얻은 물건 따위를 몰수할 수 없을 때 징수하는 추징금 집행률이 최근 3년 동안 0.01%에 불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1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전국지검 추징금 집행률이 0.0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자 100명 중 99명이 추징금을 내지 않아 ‘배짱을 튕기고’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대통령 시절 기업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은 전두환, 노태우씨 등은 각각 추징금의 24%와 80%만을 납부했다. 김우중 전 대우회장과 대우 임직원 5인은 지난 2002년 21조 2492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지만 5500만원만 납부했을 뿐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선병렬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추징금 실적이 저조한 것은 범죄자들이 국가 수사기관의 권위를 쉽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추징금 집행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