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신병원에 감금한 ‘된장녀’

2007-10-25     이수영 
아버지 상대 강도짓한 딸

20대 딸이 친아버지를 정신병자로 몰아 가두고 카드를 훔쳐 쓰다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조상수 부장검사)는 지난 15일 오모씨(여·23)를 존속감금 및 강도,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오씨는 지난 8월 9일 사설 응급환자이송단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니 병원에 호송해 달라”며 전화를 걸었다. 이송단 직원 세 명은 곧장 오씨의 아버지(61) 집으로 찾아가 다짜고짜 그를 부천시에 있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시켰다. 딸 오씨는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신용카드가 든 지갑과 핸드폰 등을 훔쳤다. 다른 형제들이 아버지의 실종신고를 내고 42일 만에 정신병원에 감금된 그를 찾았을 때는 스물셋 철없는 딸이 이미 1000만원을 거리에 뿌린 후였다.


“술 취한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어요. 수십 번씩 전화를 하다가 그래도 받지 않으면 음성 메시지로 더 심한 욕이 날아들었어요. 그냥 복수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검찰에 조사를 받던 딸 오씨는 이렇게 변명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버지의 주사가 견디기 힘들어 온라인 상담 센터까지 찾았다는 오씨의 한 달간 행적으로 봤을 때 이미 그는 상처받은 딸이 아닌 명품에 길들여진 ‘된장녀’일 뿐이었다.


몸매관리 400만원

모든 것은 무척 간단했다. 응급환자를 총알택시보다 더 빨리 병원에 ‘배달’해준다는 사설 이송단체에 전화를 건지 30여분 만에 윽박지르던 아버지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오씨는 아버지를 ‘보호’해줄 정신병원의 보호자 동의란에 서명을 했고 이송업체 직원에게 5만원을 이송 대금으로 지급했다.

딸이 아버지가 혼자 기거하던 방두칸짜리 전셋집을 찾은 건 다음날. 그때부터 오씨의 세상이었다. 아버지의 신용카드 두 장과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 핸드폰을 갖고 유유히 빠져나온 그는 곧장 강남의 백화점으로 향했다.

평소 갖고 싶었지만 눈으로만 봤던 구두와 핸드백을 사들이는데 206만원을 일시불로 결제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아버지의 죄값치고는 가볍게만 보였다. 쇼핑을 마친 오씨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유명 연예인들이 단골이라는 피부 관리와 각선미 케어를 받는데 390만원을 역시 카드로 긁었다.

스물셋의 오씨는 스스로 거액의 상속녀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버지의 전셋집도 부동산 매물로 내놓아 200만원의 현금까지 손에 쥐었다. 댄스 교습을 받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한 달을 살기엔 충분했다.


병원에 감금된 아버지

딸이 한창 ‘된장녀’ 놀이에 심취해 있을 때 ‘물주’인 아버지는 영문도 모르고 병원에 갇혀 치료 아닌 치료를 받아야했다. 건장한 청년 세 명에 의해 강제로 태워진 앰뷸런스는 안이 깜깜했고 어디로 가는지, 왜 이러는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곧장 창살로 막힌 병실에 입원한 예순의 아버지는 격렬히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누가 자기를 이곳에 보냈는지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간호사들이 치료라며 놓는 주사와 조제약은 오씨의 의식을 점점 흐리게 했다. 누군가 구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밖에는 답이 없었다.

한편 병원 밖에서는 아버지를 찾는 다른 자녀들의 수소문이 이어졌다. 오씨의 핸드폰이 없는 번호로 나오는 등 연락이 닿지 않
자 곧 경찰에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은 실종된 오씨의 나이와 건강보험공단에 의료보험 사용 기록을 통해 그가 한 달 전 정신병원에 구금됐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보호자란에 서명한 것이 막내딸이라는 것도 경찰에 알려졌다. 부유한 상속녀의 꿈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캐나다 유학까지 보냈는데

일찍 부인을 잃은 아버지는 건물 두 채의 임대료로 생활하며 딸 오씨를 캐나다에 유학까지 보냈다. 아버지 오씨는 술을 마시면 주사가 심하기는 했지만 가정폭력이나 기타 범죄기록은 없었다.

유학중이던 캐나다 현지에서 남편을 만나 이른 결혼을 한 딸이 방학 중 잠시 한국에 왔다 술 취한 아버지와 마찰을 빚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10대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힌 것에 대한 원망과 명품에 대한 동경이 엉뚱한 복수극을 낳았다.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감금한 오씨는 경찰에 붙잡히기 며칠 전 아버지의 신용카드로 비행기 표를 예매해 캐나다로 돌아갈 채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황당한 복수극을 벌인 오씨를 구속 기소한 검찰 관계자는 “딸의 통화내역, 진술 등을 종합 했을 때 술에 취해 계속 전화를 하고 음성 메시지로 욕설을 남긴 정황이 확인됐다. 오씨가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자로 판단한 것 같다”며 “딸로서 감수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입원 당사자인 아버지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입원시켰기 때문에 존속감금 혐의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또한 검찰은 아버지를 병원으로 이송한 응급환자이송업체 관계자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으나 정신병원에 대해서는 감금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입원시켰는지 여부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