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만이 살길” SOS 긴급타전

2004-11-04     홍성철 
DJ(김대중 전대통령)와 김원기 국회의장간의 10월28일 회동을 둘러싼 뒷말이 무성하다. 김 의장은 28일 오후 국회의장 취임이후 처음으로 ‘김대중 도서관’으로 DJ를 예방, 정국현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약 45분여 동안 비공개로 대화를 나눠 대화 내용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오랜만에 독대를 한 만큼 일반적인 정국현안 외에 대북특사·정계개편 등과 관련한 은밀한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김 의장이 DJ를 예방한 시기는 지난 10월28일 오후. 이해찬 국무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28일 오전)으로 17대 정기국회 첫 대정부질문이 파행된 날이었다.

또 정치권을 비롯한 학계 법조계 등 사회 각계각층은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에 따른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여기에 전국 기초단체장 5곳 등 재보궐 선거를 이틀 앞둔 날이기도 했다.이처럼 민감한 시점에 정치적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 의장은 왜 DJ를 예방했을까.김 의장측은 김 의장이 동남아 4개국 순방결과를 DJ에게 설명하는 등 안부 차원의 방문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두 사람은 김 의장의 동남아 4개국 순방 내용과 ‘한류 문화’ 등 일반적인 얘기를 주고 받았다.하지만 두 사람은 측근들을 물리고 배석자 없이 45분여 동안 비공개 대화를 가졌다. 정치권의 이목도 바로 비공개 독대 내용에 쏠려 있다. 김 의장이 국회 파행 등 정국 불안이 장기화될 조짐이 일고 있는 민감한 시점에 DJ를 예방한 배경에는 겉으로 드러난 것 외에 또다른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을 것이란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와관련 김기만 국회의장 공보수석은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른 정치·사회적 논란 가중 등 정국현안에 대해 폭넓은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고 전했을 뿐 그 이상의 대화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따라서 정치권 주변에서는 두 사람의 독대 내용을 놓고 갖가지 억측을 내놓고 있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국회 수장이 독대한 만큼 거시적인 정국현안을 화두로 꺼내들었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헌재 결정이후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한 여권이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문제로 돌파구를 찾고자하는 움직임에 비춰볼때 두 사람이 대북특사 문제와 관련해 깊이있는 대화를 나눴을 것이란 관측. 실제로 정부는 빠르면 11월 중 대북특사를 파견하고 내년 상반기쯤에 2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DJ는 최근 “대북 특사는 대통령 측근이 가야한다”며 여권 핵심 관계자들이 주창하고 있는 ‘DJ 특사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따라서 김 의장은 대북특사 문제와 관련한 DJ의 의중을 다시 한번 타진하는 동시에 경색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 해법을 위해 DJ가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했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정치권 일각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간의 합당론 등 정계개편과 관련한 은밀한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DJ와 김 의장은 지난 79년 이후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정치역정을 함께 해 왔다.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김 의장은 79년 10대 총선때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신민당 후보로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김 의장은 DJ 곁에서 정치역정을 함께 하며 원내총무 등 야당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비록 김 의장이 95년 DJ가 주도한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때 합류를 거부하고 민주당에 잔류하면서 정치 행보가 다소 엇갈리긴 했지만 두 사람이 쌓아온 20여년 정치적 신뢰감와 믿음은 아직도 두터울 것이란 게 중론이다.특히 두 사람은 호남권을 대표하는 원로정치인으로 지난 4·15총선 이후 소외되고 있는 호남권 민심을 다잡고 정치적 무주공산에 빠진 호남권에 ‘포스트 DJ’의 등장이 필요함을 공감하고 있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퇴임이후 정치적 행보를 자제해 왔던 DJ가 첫 지방 방문지로 광주를 선택하고, 이러한 일정을 재보선(10·30) 이전에 언론에 흘린 배경에는 ‘호남민심 잡기’라는 또다른 포석이 내포돼 있을 것으로 정치권은 분석하기도 했다. 결과론이지만 DJ의 광주 방문 소식을 등에 업은 민주당은 호남권 기초단체장 선거(해남·강진)에서 모두 승리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17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인생을 마감하는 김 의장도 적지 않은 고민을 안고 있다. 호남권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반면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상승곡선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지율 반전 현상은 지난 6·5재보선과 10·30재보선 결과가 잘 입증해주고 있다.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되어 있는 이상 호남권 민심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호남 분열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호남 출신 대표적 원로 정치인인 두 사람이 바로 이러한 우려에 공감하고 양당의 합당 등 향후 정계개편과 관련해 은밀한 교감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