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의 잔꾀에 날아간 2억
2007-10-10 박혁진
70대 노인이 50대 여인의 미인계에 빠져 순식간에 수 억 원의 돈을 날리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충북지방경찰청은 지난 1일 계획적으로 내연관계를 유지해오다 박 모씨를 도박장으로 끌어들인 김 씨와, 함께 사기도박을 벌여 2억 3000만원을 가로챈 김 모(36)씨 등 4명을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전모(여·41)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미인계를 통해 피해자에게 접근, 도박장으로 유인하고 기술자, 유인책, 바람잡이 등 역할을 분담해 사기도박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박씨를 끌어들이기 위해 수 개 월 전부터 범행을 계획하고 성관계를 통해 박 모 씨를 유인하는 등의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은 범행수법으로 보아 이들이 초범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하고 계속해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충북 청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박 모 씨는 가지고 있던 땅이 택지개발지구로 확정되면서 보상금 조로 100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이게 됐다. 평생 처음 만져보는 큰돈이었다.
박 씨(72)는 지난 3월 우연히 동네 부동산에서 들러 지인으로부터 50대 유부녀 김 모씨(56)를 소개받았다. 박 씨는 김 씨의 외모가 맘에 들었고 둘은 내연의 관계로 발전하게 됐다. 이후 박 씨는 김 씨와의 만남이 유일한 낙이 되어버릴 정도로 김 씨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그러나 박 씨는 김 씨가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가 자신의 돈을 노린 것이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만남이 6개월째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김 씨는 박 씨에게 “돈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지인들의 화투판에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추호도 김 씨를 의심하지 않았던 박 씨는 김 씨가 권유한 화투판에 끼게 됐고 이것이 곧 불행의 시작이었다.
김 씨의 집에서 벌어진 화투판은 평소 재미삼아 치던 그것과는 분위기도 달랐으며 오가는 판돈의 규모도 달랐다. 술을 마시면
서 치게 된 화투는 적게는 수 십 점에서, 많게는 수 백 점까지 나왔다. 천 단위가 나온 적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상대편은 뒤집는 패마다 좋은 패가 나왔다. 이렇게 벌어지는 화투판에서 김 씨는 불과 3시간 만에 2억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
재력 있는 노인이 ‘타깃’
돈을 잃고 충격을 받는 박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다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평소 건강하던 박 씨가 하루 아침에 몸져눕게 되자 이를 이상히 여긴 박 씨의 자녀들은 자초지종을 물었고 결국 박 씨가 ‘사기도박단’의 마수에 걸려들었던 것을 알게 됐다.
경찰에 알리면 자신도 피해를 입게 될까 두려워하던 박 씨를 가족들이 설득했고, 결국 뒤늦게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다.
경찰은 남녀로 구성된 사기 도박단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하던 중 박 씨의 신고로 사기도박단 일당을 검거하게 됐다.
조사 결과 이들은 박 씨와 같이 재력이 있는 노인들을 화투판에 끌어들여 사기도박을 저질러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인책과 바람잡이는 주로 전 씨 등 여성이 전담하고 도박은 남자들이 하는 식으로 조직적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특히 이들은 피해자가 사기도박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마약류의 약물을 술에 타 먹이기까지 하는 등 짧은 시간 안에 큰돈을 뜯어내기 위해 갖은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은 게임 도중에 패를 미리 자신들이 배열해 놓은 화투로 바꾸는 이른 바 ‘탄 화투’을 벌여 큰 점수를 낼 수 있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도박 전문가들은 “‘탄 화투’는 미리 짜놓은 화투를 치던 화투를 바꿔치기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패가 계속해서 뒤집힌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칠 때마다 속칭 ‘뻑’이 되게 한 후 이를 다시 자신이 가져가게끔 패를 바꿔 점수를 키운다는 것. 이런 탄화투를 사용하면 최고 9000점까지 난다고 한다. 보통 ‘탄 화투’는 3~4명이 함께 준비하기 때문에 일행이 아니면 눈
치 챌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한 마디로 ‘꽃뱀’과 ‘타짜’들의 조직이었던 셈이다.
경찰은 A씨 외에 이들에게 거금을 뜯긴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김 씨 등을 상대로 여죄를 캐는 한편 이들과 유사한 사기도박단이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들로부터 A 씨에게 먹인 정체불명의 약물을 압수해 국립과학 수사연구소에 성분분석을 의뢰했다.
#‘사기도박’도 가지가지
이번에 청주에서 적발된 사기도박단은 속칭 ‘탄 화투’라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는 ‘사기도박’으로는 아주 전형적인 것으로 일종의 눈속임이다.
최근 들어서는 ‘탄 화투’ 이외에도 다양한 수법이 사용되고 있다.
지난 1월 의정부에서 검거된 한 사기도박단은 화투 뒷면이 약품처리된 일명 ‘렌즈목’과 이를 식별할 수 있는 특수렌즈를 이용, 상대방의 패를 읽으며 도박을 해 하루 평균 300만원 가량의 돈을 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강남에서 적발된 또 다른 사기도박단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사무실에 아는 사람들을 불러놓고 건물 밖 일당으로부터 CCTV에 잡힌 상대방의 패를 무선 이어폰을 통해 중계받으며 판돈 3000만원짜리 도박을 하기도 했다.
무선 CCTV는 화재경보기 속에 설치됐고 무선 이어폰은 좁쌀 크기로 귓구멍 속에 완전히 넣었다가 막대자석을 귀에 집어넣어 뺄 수 있게 제작됐다.
또한 전선을 넣은 런닝셔츠와 연결된 증폭기의 경우 샅에 숨긴 탓에 피해자들은 사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