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분야 전문가 뭉쳐 분업화 절도
2007-09-27 윤지환
전국을 휘젓고 다니며 절도행각을 벌여온 일당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절도행각에 가담한 용의자는 총 14명으로 이들은 모두 청송감호소에서 알게된 사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많은 인원수를 이용, 각자 역할을 정해놓고 신속정확하게 집을 털고 사라져 경찰추적을 어렵게 했다.
또 이들은 감호소제도가 폐지되자 전국에 흩어져 범죄정보를 주고받으며 조직적으로 절도 행각을 벌였다. 보석감정기와 금 식별 약품 등 전문감정용품을 들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직접 보석감별을 통해 가치가 높은 것만 골라 절도를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이 출소 이후 지금까지 절도행각을 벌인 결과 2억9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거나 날치기한 것으로 보고있다.
부산 서부경찰서는 지난 19일 청송감호소에서 가출소한 뒤 전국을 무대로 상습적인 빈집털이, 날치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청송연합절도파 손모(46)씨 등 7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손씨 등은 지난 8월 25일 오후 5시 반쯤, 부산 해운대구 좌동 허모(58)씨의 16층 아파트를 복도 외벽을 통해 몰래 침입한 뒤 귀금속 20점 등 시가 62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등 지금까지 모두 18건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는 기술이라곤 도둑질
서부경찰서의 최광식 반장은 “청송연합절도파 구성원들의 평균 나이는 30~40대로 이들은 대부분 범죄자들 사이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모여 절도단을 만들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많이 발생한 것 같다”고 전했다.
최 반장에 따르면 손씨 등과 함께 붙잡힌 용의자 권모(45)씨와 도모(44)씨의 경우 절도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이들이 반평생을 감옥에서 살다 나왔음에도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은 사회부적응 탓이었다.
손씨 등은 모두 10년 이상씩 감옥에 있다 보니 사회적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들 중 일부는 용접공 등의 일을 해보았으나 업무량에 비해 수입은 턱없이 적었다.
실의에 빠진 이들이 의지할 곳이라곤 감옥동기들 뿐이었다. 가끔 만남을 가졌던 이들은 어느날 술자리에서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던 중 뜻이 서로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뜻은 크게 한탕해 인생을 전화시켜보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특기인 절도기술을 살려 모두 힘을 합치면 많은 돈을 벌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으고 한국판 ‘오션스 14’가 되기로 작심했다.
손씨 등은 먼저 계획을 짰다. 부산은 좁고 소문이 빨리 퍼지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이들은 렌트카를 빌려 전국을 돌며 절도행각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들의 실력은 과연 녹슬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손씨 등은 차를 타고 시내를 돌다 목표물을 발견하면 사전 조사를 거친 후 각자 맡은 바 역할에 따라 움직여 신속하게 집을 털고 달아났다.
최 반장은 “권씨는 과거 귀금속 세공업에 종사했던 인물로 값어치 나가는 물건들을 재빨리 식별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며 “이들은 많은 인원수를 움직여
빈 집만을 골라 털었기 때문에 매우 일 처리가 빨랐다. 때문에 재빨리 털고 다른 지방으로 사라져 버리는 이들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절도 외에 다른 범죄는 절대 안해
손씨 등은 주로 아파트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오랜 노하우를 통해 훔칠 물건이 있을만한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을 귀신같이 가려 털었다. 그리고 팀을 나눠 한 번에 두 집을 털기도 했다.
이렇게 이들이 한 집을 털고 달아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여분. 이들은 주로 작고 값나가는 물건만 노렸다. 부피가 크고 현찰화가 힘든 물건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또 이들은 의외로 고급아파트는 손대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최 반장은 고급아파트의 경우 보안시설이 철저해 꼬리를 밟힐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절도 외에 다른 범죄는 일절 저지르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실제로 이들은 호남지역에서 절도행각을 벌일 당시 빈집인줄 알고 들어간 집에서 한 젊은 여성이 샤워하고 있는 것을 보고 도로 나왔다고 경찰에 털어놨다.
장사밑전 마련위해 범행
또 이들은 절도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모두 똑같이 나눠가졌다.
훔친 귀금속 중 금은 녹여 금괴를 만들어 이를 판 현찰을 똑같이 나눠가짐으로서 분배에 대한 불평을 없앴다.
한편 이들은 장사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를 저지르게 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에 대해 최 반장은 “반평생을 감옥에서 생활하다 사회로 나왔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힘든 막노동뿐이었다”며 “비록 전과자라고는 해도 범죄의 재생산을 막기 위해선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