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고발] 단통법 시행 이후 현장 가보니…
통신대리점주 ‘울상’ 액세서리점은 ‘불티’
가격경쟁 사라져 소비자 부담 증가
해외 직구 급증…법안 폐지 운동도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 시행에 따른 소비자들의 분노가 깊어지고 있다. 업체들 간 경쟁이 사라지면서 보조금 혜택은 줄어들고, 위약금·통신요금 부담만 더 늘어났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해외에서 휴대전화를 직접 구입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이 영향으로 대리점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고 싸늘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반면, 스마트폰 케이스를 비롯한 관련 액세서리 구매는 급증하고 있다. 현재 사용 중인 스마트폰을 오래 쓰기 위함이다. “전국민을 호갱으로 만들고, 이동통신사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일요서울]이 그 현장을 들여다봤다.
단통법이 시행된 후인 지난 8일 이동통신 판매점이 모여 있는 대형 전자상가에선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자상가 밖에 자리한 대리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우리 매장은 16만 원 지원’이란 문구가 적힌 한 매장을 통해 이동통신사들의 보조금 책정 수준을 체감하게 했다. 이 때문인지 어쩌다 눈에 띄는 손님들 대부분은 비싼 가격에 발길을 돌렸다.
이들 중 한 소비자는 “단통법 시행 후 보조금 혜택이 너무 줄어서 휴대전화를 구입하기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 역시 “소비자들 간의 차별을 없애겠다더니 그냥 다 같이 비싸게 사라는 말이었다”며 “이동통신사들만 좋아졌다”고 비판했다.
휴대전화 판매장 관계자들 중에는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털어놓는 이들도 있었다. 한 대리점주는 “단통법 시행 전보다 혜택이 줄어들었는데 어느 누가 와서 휴대전화를 사려고 하겠느냐”며 “전에는 서비스로 액정보호필름, 휴대전화 케이스를 지급했었는데 이젠 할 수 없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이처럼 단통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 3사의 단말기 보조금 내역이 공개되면서 유통 현장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신형 단말기에 10만 원대에 불과한 보조금이 지원되면서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도 얼어붙은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의 평균 보조금은 올해 초 42만7000원에서 단통법 시행 후 약 절반 이상이 줄었다. 이는 정부가 고시한 3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동안은 출고가와 보조금, 판매가 등을 서로 공개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왔지만, 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을 모두 공개하게 되면서 경쟁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단말기 보조금에 대한 위약금도 소비자가 떠안게 됐다. 그동안은 이동통신사마다 다른 보조금을 책정해 약정기간 내 해지를 할 경우 단말기 위약금을 소비자에게 물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유통 대리점의 지원 대신 소비자가 위약금 부담을 고스란히 지게 됐다.
보조금 공시제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이동통신 3사는 보조금을 게시한 이후 일주일 동안 가격을 변동할 수 없다. 하지만 보조금을 새롭게 갱신하지 않은 경우, 9일부터 자유롭게 보조금을 변동할 수 있다. 때문에 이동통신사들은 무작정 보조금을 올리기보다 경쟁사의 공시를 살핀 후 조정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전망이다.
스마트폰 오래 쓰려 케이스 구매↑
이동통신 시장의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때 아닌 호황을 누리는 곳도 있다. 바로 스마트폰 케이스를 비롯한 관련 액세서리 가게다. 휴대전화 교체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현재 사용 중인 스마트폰을 오래 쓰기 위한 방법으로 케이스를 비롯한 액세서리를 찾는 것이다.
쇼핑몰 아이스타일24에 따르면 단통법이 시행된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스마트폰 케이스와 액세서리 판매량은 단통법 시행 직전 6일 간의 판매량 대비 각각 179%, 178%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과 함께 눈에 띄는 판매 변화가 나타났다”며 “특히 스마트폰을 장기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충격흡수 케이스, 충격보호 방탄필름의 판매량은 각각 시행 이전에 비해 20%, 18% 증가했다”고 말했다.
또 휴대전화를 해외에서 직접 구입을 하려는 움직임도 늘어났다. 특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스마트폰 직구가 늘어나는 모양새다.
게다가 최근 인터파크 등 대형 인터넷 쇼핑몰이 샤오미를 비롯해 화웨이, 원플러스원 등 중국산 스마트폰 공기계를 해외 구매 대행 방식으로 판매하면서 단통법 역풍에 힘을 보태는 셈이 됐다. 한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후 일주일간 중국 스마트폰 상품 클릭수가 전주와 비교해 약 2배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동통신사들은 보조금을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2년 약정, 7만 원 이상의 고가요금제를 사용할 경우에만 혜택을 볼 수 있는 데다가 상향 조정된 보조금도 단통법 이전과 비교했을 때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액수이기 때문이다.
이는 번호이동 수치 급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루 평균 1만6000건에 달했던 번호이동 건수는 단통법 시행 후인 지난 7일 7118건에 그쳤다. 단통법 시행 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단통법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에 나섰다. 소비자단체 컨슈머워치는 지난 2일부터 온·오프라인에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8일 기준 10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광화문을 시작으로 한 서명운동은 신촌, 명동 등에서도 지속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들은 “단통법으로 오히려 기업 간 담합을 조장하고,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단통법 폐지를 위한 입법 청원에 나설 것이다”고 밝혔다. 또 “단통법은 치열한 보조금 경쟁으로 무질서한 시장을 바로 잡고 단말기를 자주 교체하는 소비자들의 과소비를 계도하겠다는 정부의 가부장적 시각에서 비롯된 정책”이라며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만 늘린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통법으로 자율적인 시장 거래를 제한하는 것보다 기업들이 더 싼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공급하도록 경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소비자에게 더 이득이 될 것이다”면서 “통신비 인하는 요금인가제를 풀 때 통신사 간 경쟁으로 자연스럽게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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