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정계 실력자가 그녀의 배후

2007-09-06     윤지환 
신정아 ‘비호세력’ 추적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이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 신씨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비호세력 존재설’이 갈수록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신씨를 비호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이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이들은 신씨를 비롯해 장윤스님, 한갑수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 박광태 광주시장 등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이 사건에 대해 일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의혹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신씨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장윤스님마저 갑자기 침묵을 고수해 외압에 의한 꼬리자르기가 시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씨는 어떻게 미술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됐으며 대체 어떤 방법을 통해 급성장 할 수 있었을까. 또 신씨의 비호세력 존재설은 어떤 근거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일까. 미술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만나 이 모든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들어 보았다.


미국의 예일대학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는 신씨가 실은 어디서 무슨 공부를 했는지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씨가 캔자스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으로 입국한 것은 1997년으로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의 일이다. 그가 금호미술관에 가짜이력서를 들고 찾아간 것은 같은 해 9월. 그는 당시 수석 큐레이터였던 박영택 교수에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이에 신씨는 한 달 후 전시장 영어 안내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했다. 이때부터 ‘신정아 쓰나미’는 그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미술계 모순적 구조 이용

신씨에 대해 잘 아는 한 미술계 인사는 “신씨의 행적을 살펴보면 국내 활동 10년을 정확히 5년 단위로 나눠 1기와 2기로 구분할 수 있다”며 “1기는 신씨가 국내 미술계에 발을 들여 미술계의 분위기와 지도층 인사들의 동향을 익히는 시기였다. 그리고 2기는 본격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였던 시기라고 보면된다”
고 말했다.

이 인사는 신씨가 금호미술관을 통해 미술계에 첫발을 들인 이후 수년간은 국내 미술계를 철저히 연구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를 통해 미술계에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접근방법을 탐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이런 학습이 없이는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있는 미술계에서 그 같은 성공을 거두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이 인사의 분석이다.

이 인사는 “신씨는 미술계 인사들에게 수백만원대의 선물을 거침없이 선사한 것으로 드러난 것에서 알 수 있듯 신씨는 어떤 인사에게 어떻게 접근하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다하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며 “이런 변별력은 국내 미술계를 면밀히 연구하지 않으면 쉽게 생기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신씨는 상당히 영리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술계 관계자들은 미술계에 대해 학연 지연 등의 인맥이 없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신씨는 이같은 미술계의 맹점을 철저하게 노리고 접근했다는 것이다.

미술계 관계자들 가운데 신씨로부터 고가의 선물을 받아 챙긴 인사들이 누구이고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선 아직 드러난 바 없다. 하지만 관계자들 사이에선 ‘누가 얼마짜리 선물을 받았다더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퍼져있는 상태다. 미술계에서 신씨의 로비 동선에 대해 쉬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지도층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배후설의 시작

신씨를 둘러싼 의혹이 미술계에 본격화된 것은 광주비엔날래 총감독 선발과정에서다.

각종 로비를 통해 미술계에서 급성장한 신씨가 광주비엔날래 총감독으로 선임되자 미술계에선 지난 5월부터 신씨의 정치권 배후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미술계는 정말 좁기 때문에 누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신씨는 예외였다. 그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광주비엔날래 총감독 선임과정 또한 그랬다. 원래 신씨 이전에 총감독 내정자는 따로 정해져 있었고 미술계 인사들 모두 그 내정자가 총감독이 될 가능성이 80% 이상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신정아라는 인물이 나타나 모두 너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월간 퍼블릭아트의 홍경한 편집장은 비엔날래 총감독 선임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며 “정말 상식 밖의 일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미술계에서 뒷말이 무성했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신정아 배후설이었다”며 “철저히 학연 지연으로 돌아가는 미술계에서 미술계 인사들이 모르는 일이 벌어졌다면 그건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것 아니겠나. 그 외부의 힘이 바로 정치권”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비엔날래는 100억대의 예산이 들어가는 초대형 문화 이벤트다. 이 이벤트의 자금은 광주시장이 집행하고 총감독이 운영하게 된다. 때문에 총감독 선임에 대해 광주시장이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홍 편집장은 “하지만 광주시장은 신씨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라고 반문하며 “신씨에 대해 박 시장이 관여한 것은 분명하나 그가 평소 신씨와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박 시장에게 신씨를 추천했을 것이다. 시장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정치인뿐이다”라고 말했다.

또 홍 편집장은 “알려진 바와 같이 박 시장, 한갑수씨 그리고 이종상씨가 신씨의 선임을 추진한 주요 인물들이다”며 “그런 인사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내가 이들에게 자세한 내막을 분명히 밝혀달라고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이들은 신씨에 대해 모르고 추천했다고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
한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 쉬었다.

홍 편집장은 또 “내가 이종상씨에게 신씨의 총감독 선정 배경과 누가 배후세력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내가 아는 바 없다. 그런 내용 밝히면 일이 커진다’며 함구했다”고 전했다.

홍 편집장에 따르면 이들은 신씨 선정 당시 다른 후보자의 탈락에 대해 ‘영어를 못한다’ ‘경력이 부족하다’ 등의 이유를 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당시 미술계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다. 그게 이유라면 신정아라는 인물은 나이도 어리고 다른 후보에 비해 경험도 전무할 뿐만 아니라 실력이 검증된 예가 아무것도 없다”고 반발했으나 허사였다고 홍 편집장은 전했다.


꼬리무는 정치세력 개입설

이와 함께 홍 편집장은 정치세력 개입설에 대해 “박 시장을 움직이고 이종상씨를 움직였다면 신씨 배후에는 분명 거물급 인사가 존재하고 있는게 확실하다”며 “지금 청와대에서 발뺌하고 있지만 그 내막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씨에 대한 배후설이 설득력을 얻는 근거는 이외에도 신씨의 해외출국을 들 수 있다.

신씨는 사건이 커지자 학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미국으로 급히 출국했다. 학위를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라면 국내에서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신씨는 왜 출국을 선택했던 것일까.

미술계 인사들은 이에 대해 “누군가 신씨를 해외로 도피시킨 듯하다.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신씨를 피신시킨 기색이 역력하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실제로 신씨는 출국당시 신용보증기금 300만원을 공항에서 납부하고 갔다. 이는 채무 상환액 2달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때문에 2달 동안을 잠적 기간으로 보고 출국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돌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의 한 인사는 “신씨가 미국으로 도피한 것은 단순 도피가 아니라 누군가 그에게 자리를 피하라고 지시한 것 같은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며 “현재로선 공개할 바가 못되지만 그런 정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이미 신씨가 도피할 당시부터 미술계에선 누군가 피신시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이를 증명하듯 청와대 변양균 실장의 개입설이 불거져 나왔다. 이에 미술계에선 우연의 일치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한편 신씨와 불교계 커넥션 의혹에 대해서도 말들이 무성하다.

홍 편집장은 “신정아의 어머니가 불교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술계와 연관성은 찾을 수 없다”며 “신씨가 동국대 교수가 된 것과 비엔날래 총감독이 된 것은 별개의 일로 보인다. 그러나 두 건 모두 정당한 방법이 아닌 주변 의 인맥과 로비를 동원한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씨와 불교계의 연관성을 찾자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그의 어머니 이모씨다.

신씨의 어머니 이씨는 불교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청송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현재는 활동이 뜸하지만 과거에는 신씨의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청송 지역의 주민 A씨는 이씨에 대해 “이 일대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발이 넓어 아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히 불교계 인사들과 가깝다고 들었다”며 “신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비리 뉴스가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고 수군거렸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유학하고 귀국해 미술계에서만 활동한 신씨가 미술계와 불교계를 동시에 넘나들며 양쪽 인사들을 포섭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미술계와 불교계를 동시에 뒤흔들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신정아 쓰나미가 향후 어떻게 잠재워질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미술계 연 7000억원 시장

월간 퍼블릭아트의 홍경한 편집장에 따르면 대한미술협회의 회장 선거에 10억원 가량의 돈이 투입된다. 이정도면 과거 정치권 선거비용에 맞먹는다. 이는 회장자리가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홍 편집장은 “미술계에 유통되는 돈은 연간 7000억 규모로 조만간 1조원대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이라며 “임기가 3년인 회장 자리에 앉으면 엄청난 돈을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술인으로서 창피하지만 이렇게 많은 돈이 움직이다보니 미술계에선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의혹들이 수없이 많다”며 “이러한 것들이 정화되지 않는 한 신정아 사태와 같은 뇌관은 항상 미술계에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