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만 남기고 친구와 영원한 여행

2007-06-20     윤지환 
건설현장서 중학생 2명 이상한 자살사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모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지난 12일 오전 5시30분경 A(15·중 3년)군 등 중학생 2명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현장 관리인 박모(59)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이들은 1m간격으로 쓰러져 있었으며 공사현장 12층 난간에는 ‘발견하면 어머니에게 연락해 주시고 저희는 밑에 있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메모와 안경, 지갑 등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들의 시신에 타살 흔적이 없고 공사 현장 12층에 메모와 유품이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었던 점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그러나 이들은 학교생활이 원만하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던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나 자살의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또 이들의 유가족들과 같은 학교 친구들은 “왜 자살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경찰은 일단 자살 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 중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사인은 과연 무엇일까. 경찰 수사기록을 통해 그 의문점들을 살펴보았다.


파주 K중학교에 재학중인 A(15)군과 B(15)군의 사망소식을 접한 유가족과 급우들은 그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을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두 학생이 동반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경찰의 설명이었다.

특히 두 학생과 가까이 지낸 급우들은 “자살이라니 말도 안된다”며 친구의 죽음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급우들에 따르면 두 학생은 학교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성적저하 등 자살할만한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사망 전까지 아무런 이상증세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게 급우들의 설명이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고양경찰서는 “정황으로 봐서는 자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두 학생의 주변인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며 “하지만 지금으로선 특별하게 정황을 뒤집을 수 있는 단서가 없다”고 전했다.


성숙함이 자살의 원인?

경찰에 따르면 사망한 두 학생은 교내에서 절친한 친구사이로 학교에서 각각 전교 학생부회장과 지도부를 맡고 있었고 성적 또한 상위권이었다. 뿐만 아니라 급우들과의 관계도 원만해 왕따나 폭행에 시달려온 사실도 없었다. 다만 주목을 끄는 대목이 있다면 그것은 두 학생이 다른 급우들에 비해 조숙했다는 점이다.

경찰이 유가족과 급우들을 상대로 조사해본 결과 두 학생은 사춘기를 맞아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가족과 담임선생님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두 학생은 책을 많이 읽어 지적수준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높고 상당히 어른스러운 편이었다”며 “두 학생 중 A군은 삶에 대해 고민하며 살기 싫다는 식의 내용을 일기장에 기록해 둔 것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또 이 관계자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라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아직 단정하긴 이르지만 이런 정황들로 미루어 현재로선 일단 자살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 부검 반대

아울러 그는 “보다 정확한 사인을 가려내기 위해 부검을 하려했지만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법원에서 이를 기각했는데, 그 이유는 A군의 일기가 자살을 암시하고 있고 유가족들이 부검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육안검시에서 두 학생은 고층건물에서 떨어질 때 발생한 두개골 골절 외에 타인에 의한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A군이 비록 일기장에 삶을 부정하는 내용의 글을 기록했다하더라도 B군은 특별히 눈에 띄는 흔적을 남긴 것이 없다. 게다가 죽음을 앞두고 짤막한 메모만 덩그러니 남겨놓은 점도 어색하다.

이에 대해 경찰은 “사건 발생 장소의 특성상 타살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며 “이들이 발견된 아파트 공사 현장은 침입이 쉽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강제로 끌고 들어가려 했거나 현장에서 실랑이가 있었다면 경비원 박씨가 알아챘을 것”이라며 타살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또 이들의 시신을 발견한 현장 관리인 박씨도 경찰 조사에서 “요즘은 건설현장에 좀도둑이 많아 현장을 자주 순찰한다”며 “누군가가 현장 안으로 들어와 소란을 피우거나 인기척을 냈다면 내가 알아챘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편 유가족들은 경찰 조사 결과에 대해 수긍은 하면서도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가족들은 두 학생의 자살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일기장 등을 미루어 볼 때 충동적으로 자살한 것 같지는 않고 지속적으로 삶에 대해 고민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