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만 하다 추적 당해 ‘쇠고랑’
2007-06-20 정은혜
‘제이유 전방위 로비 의혹’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지난 15일 한 복지단체의 대표인 서경석 목사가 제이유 측에 수억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시인하면서 제이유의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최재경)에 따르면 제이유 로비 대상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은 국회,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검찰, 경찰 등 상당수 권력기관 인사가 모두 등장하고 있어 ‘전방위 로비’가 무엇인지를 실감케 하고 있다.
특히 계좌추적 전문가로 손꼽히는 검찰 수사관이 오히려 계좌추적으로 덜미를 잡힌 사실이 드러나 관심을 끌고 있다. 18년여 간 ‘자금추적 전문 수사관’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K씨가 그 장본인.
이를 두고 검찰 관계자들은 ‘누구보다 계좌추적의 위력을 잘 아는 그가 과연 남의 돈을 받았을까’하는 의구심과 함께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K씨는 제이유 주수도 회장에게 각종 정보를 알아봐주고 1억 8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20일 구속됐다.
K씨와 근무한 적이 있는 한 검찰관계자는 “성실하고 조용한 성격인 K씨가 주 회장으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계좌추적 전문가가 도리어 계좌추적에 발목 잡힌 셈”이라며 기막혀 했다.
‘계좌추적 베테랑’ 명성
그렇다면 K씨는 어떤 이력을 갖고 있을까.
또 다른 검찰관계자에 따르면 K씨는 지난 84년 공채를 통해 9급으로 검찰에 입문했다.
이후 중수부에서만 18년여 간 근무하며 굵직한 사건의 계좌추적을 담당, ‘자금추적 전문 수사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1995년 펴낸 ‘금융거래의 실체와 추적’이라는 지침서에 내로라하는 특수부 검사들과 이름을 나란히 올렸을 정도로 그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이 관계자는 “뿐만 아니라 법무연수원에서 검찰직원들에게 계좌추적 강의를 하는 것도 K씨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K씨는 지난해 4월 서울중앙지검이 추진한 ‘계좌추적 요원 양성 프로그램’에서 수개월 간 강의한 바 있다. 전체수사관 280여명을 7~8개조로 나눠 매주 2차례씩 자금추적의 이론과 실무에 대해 2시간씩 교육을 했던 것.
당시 검찰은 자체 양성한 계좌추적 요원을 활용하면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검이나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아도 되고, 그럴 경우 검찰 직원의 사기나 위상도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야심차게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뿐만 아니라 K씨는 구속당시에도 법무부에서 우수 직원 단기연수로 유럽
에 다녀오다 공항에서 체포된 것이었다.
K씨의 이름이 검찰에 널리 알려진 건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비자금 사건이 계기가 됐던 것.
당시 K씨는 40여 일간 계좌추적을 벌인 끝에 현철씨의 가·차명계좌 10여개를 발견, 현철씨를 구속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계좌추적에 ‘덜미’
이처럼 검찰 내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였지만, 계좌추적의 베테랑도 검찰 계좌추적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검찰이 ‘제이유 그룹의 전방위 로비 의혹 수사’를 벌인 결과, K씨가 로비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금융 사기범 및 브로커 등의 계좌를 추적해 이들의 불법거래 혐의를 밝혀내는 수사관이 도리어 계좌추적으로 덜미를 잡히자, 검찰관계자들은 18년 이상 계좌추적을 담당해 온 베테랑 수사관의 어이없는 범행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중수부에 몸담고 있는 한 검찰관계자는 “누구보다 계좌추적의 위력을 잘 아는 그가 쉽게 남의 돈을 받았는지 여부에 의구심이 든다”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검찰관계자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개도 달리다 발이 꼬일 수 있는 법”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번 사례로 인해 검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마약범죄 담당 수사관 마약거래로 ‘철창신세’
이번 사건과 비슷한 일례로, 지난해 말에는 마약범죄를 단속해야 할 검찰수사관이 오히려 마약판매 중간책 역할을 하면서 마약을 팔아오다가 구속된 사건도 있었다.
창원지방검찰청 특수부는 부산에서 마약사범과 은밀하게 거래를 하면서 돈을 챙겨온 혐의로 마약담당 수사관인 A(47)씨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5월 허모씨에게서 700만원을 받고 자신이 필로폰 100g을 숨겨놓은 부산의 한 모텔을 알려주었다.
또 한 달 뒤에는 다른 마약사범 두 명과 공모, 부산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필로폰 2kg을 넘겨받기도 했다. 이는 한 번에 6만6000여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마약사범을 잡는 검찰 수사관이 마약밀매를 하다 쇠고랑을 차게 되자,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당시 검찰은 구속영장에 피의자인 A씨의 직업을 명기하지 않아 ‘제 식구를 감싸고 있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