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대립에 고객 볼모로 잡는 국책은행들

금융노조 총파업…주도하는 기업은행

2014-09-29     김나영 기자

겉으로는 관치금융 철폐, 이면에는 복지축소 불만
시중은행 “남의 밥그릇 싸움까지 끼어들기 싫어”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14년 만의 전국금융노조 총파업이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강행 중이다. 금융노조는 지난 3일 1차 총파업을 진행했고 30일과 다음 달 10일에도 2, 3차 총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이후에도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11월 이후에는 무기한 총파업을 예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만큼 금융노조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참여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행의 경우 자칫 주도자로 몰려 여론의 뭇매를 맞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금융노조 총파업이 2차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번에는 아예 시중은행이 총파업에서 빠진 모양새다. 이번 총파업에 참여하는 곳은 기업은행, 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6곳이다. 사실상 금융노조가 아닌 한국노총의 주도로 공기업들이 뭉쳐 진행될 만한 구성이다.

사실 은행 영업점이 문을 닫으면 불편한 것은 노조나 사측이 아닌 고객들이다. 이에 금융권 파업은 고객을 볼모로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지적이 불거지곤 한다. 게다가 이번 2차 총파업의 경우 겉으로는 관치금융 철폐를, 이면에는 복지축소에 따른 불만을 내걸고 있다. 이에 금융노조와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기업은행은 시중은행들의 공감마저 얻지 못하는 형국이다.

공공기관 재지정 후 급여·복지 줄어들어

시중은행이 2차 총파업에서 아예 빠진 것은 정부와 금융공기업 간 공공기관 정상화 이슈에 말려들 이유가 없어서다. 각 은행마다 당면한 과제가 있는데 남의 밥그릇 싸움까지 끼어들기 싫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1차 총파업에서는 비정규직·무기계약직 차별 철폐, 모성보호 및 양성평등 실현, 정년연장·통상임금 문제 해결, 성과문화 척결 등 올해 임단협 요구안을 중심으로 모였다.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설령 이름만 올리더라도 대부분 참여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2차 총파업은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에 반대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그중에서도 국책은행을 비롯한 금융공기업의 복지혜택을 축소하는 것이 파업의 최대 원인이 됐다. 연간 1인당 배정된 복리후생비를 100만 원 이상씩 줄이라는 정부의 지시가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공기업들의 복지혜택 감축이 이뤄지지 않으면 개혁의지 부족으로 간주하고 해당 기관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기관장들이 어떻게든 임직원들을 설득해 비용을 줄이라는 메시지다.

현재 기업은행은 지난 4월 감사원 감사에 이어 지난달에는 국세청 세무조사로 연일 긴장하고 있다. 기업은행 측은 이번 세무조사가 2010년 이후 진행되는 정기세무조사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로 볼 때 그 강도는 평소와 다르게 압박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같은 세무조사를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정상화와 연결 지어 일종의 국책은행 길들이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때마침 산업은행도 함께 세무조사를 받고 있어 이러한 의혹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14년 만의 파업에도 명분 약해 참여 저조

최근 정부는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구조를 혁파하고 복지부분을 대폭 축소해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기업은행의 경우 산업은행과 함께 공공기관 지정 해제와 재지정을 반복하며 성과급 축소로 속을 끓이고 있다.

이 와중에 공공기관 정상화까지 고삐를 죄자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당연히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은행은 산업은행에 비해 높은 참여율로 사실상 파업을 주도적으로 이끈다는 전언이다.

지난 3일 이뤄진 1차 총파업에서도 기업은행의 파업 참여율은 가장 높았다. 기업은행에서는 이날 3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업은행 전체 직원 1만2000명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타행의 경우에는 파업 참여율이 매우 낮았다. 우리은행에서 파업에 참여한 직원은 약 1000명으로 전체의 7%에 지나지 않았다. 점포별로 보면 많아야 1~2명 수준에서 그친 것이다. 국민은행도 비슷한 수준에서 참여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씨티은행 등은 파업에 참여한 직원이 모두 노조 간부 위주로 구성됐다. 많아야 20~30여 명 수준에서 이뤄진 이름뿐인 참여다. 농협은행도 노조위원장 선거 등이 겹쳐 미미한 참여율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2000년 이후 14년 만에 이뤄지는 금융노조 총파업이 이토록 관심을 얻지 못하는 것은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이해관계가 지극히 다르기 때문”이라며 “그것도 파업을 주도하다시피 하는 것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고 요구조건도 공공기관 복지축소 철회에 몰려 있는 만큼 시중은행들은 파업에 참여할 만한 여지를 모두 잃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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