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시철도공사, 폭압적 조직 문화 논란
여덟 번째 기관사의 죽음, 무엇이 문제일까
기관사 “감시와 차별은 기본, 아픈 것도 평가 받아”
사측 “환경 개선 중…서로 간 신뢰 부족서 비롯된 것”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로 근무했던 송모씨(44)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가 자살을 선택한 것은 2003년 8월 이후 벌써 여덟 번째다. 이를 두고 그들의 동료와 서울도시철도 노동조합 등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폭압적 조직문화와 1인 승무로 나홀로 근무, 100%에 가까운 지하 터널구간 운행, 낮은 근로조건, 높은 노동강도 등을 기관사 정신질환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일요서울]은 일선 기관사들과 서울도시철도공사의 목소리를 번갈아 들어봤다.
서울도시철도공사(서울지하철 5~8호선) 소속 기관사가 우울증을 앓다가 또 다시 자살을 택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기관사 자살 사고가 발생한 건 2003년 8월을 기점으로 여덟 번째다. 이들은 대부분 우울증이나 신경성질환을 호소한 바 있다.
경찰과 서울도시철도공사노동조합은 “지난 18일 지하철 7호선 전동차를 운영 중인 대공원승무사업소 소속 기관사 송모씨가 이날 새벽 자택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줄에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날 송씨의 사망 소식은 오전 9시께 처남이 송씨를 발견해 도시철도공사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에 따르면 사망한 송씨는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앓아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들도 송씨가 우울증을 호소해 병원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고 증언했다. 아울러 송씨는 1994년 도시철도공사에 입사해 지난 2000년 12월 사상 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노조는 기관사 정신질환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폭압적 조직문화와 억압적 노무관리와 현장통제 ▲ 1인승무로 나홀로 근무 ▲ 100%에 가까운 지하 터널구간 운행 ▲ 서울이라는 인구밀집도시의 높은 혼잡도 ▲ 타 지하철 운영기관보다 현저히 낮은 근로조건과 처우 ▲ 높은 긴장도를 요구하는 반복작업 ▲ 조밀한 통제방식과 처벌에 의한 통제시스템 ▲ 인력부족으로 인한 높은 노동강도 ▲ 성과시스템에 의한 과도한 경쟁 ▲ 민원과 봉사활동 실적관리 ▲ 높은 직무스트레스와 심각한 차별(복수노조, 승진, 성과급, 표창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태훈 서울도시철도 승무본부장은 “기관사들은 항상 감시받고 차별받는다”면서 “어느 노조에 속해 있는지, 동아리 활동은 무엇을 하는지 등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대상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더욱이 “아프면 바로 실적 평가로 이어진다. 누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면담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억압하던 사람이 실시하는 면담은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또 “아직도 기관사들을 억압하던 주요 보직 인사가 회전문 인사를 통해 모두 자리하고 있다”면서 “죽은 사람은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전형적인 공무원들의 적폐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문제는 수두룩하게 나타났는데, 고쳐진 점이 없다는 목소리다.
쌓여가는 적폐
그 외에는 죽은 송씨가 좋아하던 축구동호회조차 회사가 해체시켰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했다. 팔·다리가 부러져도 열차를 운행했고, 암 수술을 앞둔 환자도 운행을 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서울시의 승무 특정감사 당시도 비슷한 지적이 쏟아져 나와 이를 방증한다. 감사결과 보고서는 “심사승진 및 포상(표창 등)업무는 차별적이지 않고 공정성과 형평성이 요구되는 중요한 분야임에도 노조 간 차별경향이 있다”고 명시한다.
기관사 처우 개선과 관련해선 “지난해 기준 12건(미이행 4, 추진중 8)은 미이행 상태에 있으며 일부(4건)는 사측에서 의지만 있다면 쉽게 완료 가능한 사업임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인사노무관리 D/B 파일’은 기관사들을 조합활동 여부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조직적으로 기록 관리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도시공사 측은 많은 오해가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도시공사 관계자는 “노동조합에서 주장하는 폭압적 조직문화라는 인식은 안전과 경영성과 창출의 가치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일부 갈등과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구성원 간 소통과 공유, 신뢰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공사에서는 기관사 사망사고 이후 지속적으로 기관사들의 직무여건과 근무분위기 개선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정기적인 ‘소통의 날’ 운영과 ‘자율소통-Day’, ‘화목 소통-Day’ 운영과 정신건강 관리 사업인 기관사 상담 등 예방치료 실시, 휴(休) 프로그램 운영을 근거로 내세웠다.
마지막으로는 “기관사의 사망 원인은 조직문화나 업무방식 등 특정한 원인으로 한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안”이라며 “전문기관의 객관적인 연구 분석을 통해 직무와의 개연성을 확인해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들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지난달 새로 부임한 김태호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에 대한 희망을 놓지는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8일 “서울도시철도공사를 책임질 신임사장으로 김태호 전 차케어스 사장을 공식 임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수년째 이어진 문제점들을 모두 신임 사장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면서 “하지만 신임 사장 역시 이 같은 사건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는 만큼 향후 강력한 개선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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