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의 대반격 文(김문수)-武(김무성)합작깨기 시작됐다
친박 쳐내기 긴장…최경환·서청원 반격 준비
공천 앞두고 체제 흔들어 비대위 출범 구상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김무성 대표체제가 들어선 지 2개월여 만에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아직 집안싸움이 일어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서서히 양쪽으로 쪼개지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친박계 좌장에서 비박계 수장으로 돌아선 김 대표가 당내의 ‘박근혜 대통령 색채 빼기’에 나섰고, 위기감을 느낀 친박계에서 반격을 준비하는 까닭이다.
이재오계 이군현 사무총장 등장
현재 김 대표체제 새누리당의 ‘탈박(脫朴)’ 시도는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방법도 노골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여론의 관심이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의 내홍, 김현 의원이 연루된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 쏠려 있는 틈을 타 기습적으로 친박 색채 지우기에 나섰다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김 대표가 당권을 잡은 직후 이재오계인 이군현 의원을 당의 살림과 조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 자리에 앉힌 건 서막에 불과했다. 당의 체질을 바꾸는 보수혁신위원회를 꾸리는 과정에서 ‘김무성의 야심’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에게 위원장을 맡긴 것을 시작으로 친이계인 나경원 의원을 비대위에 포진시켰다.
김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박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던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따랐던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혁신위에 끌어들이려 했다. 당내 반발과 시도지사의 업무부하 등을 감안해 홍·원 지사는 공식 혁신위원이 아닌 자문위원으로 직함을 바꿨지만 일단 두 사람도 ‘반박(反朴) 연대’에 합류한 걸로 봐야 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문무(김문수-김무성) 합작’이다. ‘문무합작’은 김문수 위원장이 만든 용어다. 김 위원장은 “우리 김무성 대표와 저는 말하자면 ‘문무합작’을 통해서, 앞으로 여야 간에도 다 합작을 해서 정말 우리 대한민국이 국민이 바라는 정치가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 이렇게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와의 혁신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설, 또 자신이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울 것이란 관측을 해명하면서 나온 말이지만 향후 과감한 정치행보, 역할을 할 것이란 다짐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그런 ‘김문수의 야망’을 알면서도 그를 영입했다. 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 경쟁자로 꼽히는 홍준표·원희룡 지사까지 끌어들였다. 왜일까.
‘김무성의 도박’은 여당 내에 깊숙이 뿌리내린 친박계 쳐내기의 사전 포석이다. 친박계의 파워가 워낙 막강하다 보니 혼자 힘으론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거대한 적에 맞서기 위한 ‘비박 연합군’을 꾸린 셈이다.
김 대표는 친박계에 맞선 인적 대항마 집단을 꾸린 외에도 친박 핵심과 긴장관계도 조성해 나가고 있다. 아직 박 대통령을 직접 건드리지는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여권의 정권재창출 필수요건임을 잘 아는 까닭이다. 대신 박 대통령의 외곽을 치는 일은 서슴지 않는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재정 경제성 논쟁’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같은 시기에 다른 비박계 중진들도 친박계 치기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친이계 중진인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은 박 대통령이 밝힌 해경 해체를 재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재오·김태호 의원은 박 대통령의 ‘세비 반납’ 발언을 정면 비판했다. 김태호 의원도 잠재적 차기 대권주자이지만 김 대표를 ‘형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인물이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가 친박계와의 본격적인 전쟁에 대비해 장기포석을 깔고 있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황 평론가의 해석이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 복심인 이정현 의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에 기용하고, 혁신위에 잠재적 대권경쟁자들을 포진시키는 것으로 ‘통큰 정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론 실세 경제부총리와 재정건전성 논쟁을 일으키면서 ‘할 말은 하는 여당 대표’의 이미지도 각인시킨다. 당내 인사로 통큰 리더십을 과시하고 보수층에 어필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제목소리를 내면서 친박을 옥죄어 가는 단계로 파악된다.”
이정현 “난 지퍼를 딱 닫았다”
김 대표의 노림수를 노련한 친박계 중진들이 모를 리 없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친박의 힘이 약해지면 2016년 총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시절과는 또 다른 형태의 ‘친박 학살’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조직적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김 대표의 노림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다. 만일 현시점에서 친박-비박 대치가 가시화될 경우엔 아직 집권 전반기인 박근혜 정부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다.
혁신위 멤버 추가 인선 문제를 논의한 25일의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이정현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나는 지퍼를 딱 닫았다. 당내 의견이 모아지면 그걸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논란의 확산을 원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다.
그렇다고 서운한 심정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 김 대표의 친박 쳐내기 행보가 과하다 싶으면 견제구를 날리는 정도로 대응하고 있다. 친박 중진인 유기준 의원은 “계파 색을 한 쪽만 골라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친박은 혁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인지…”라고 슬쩍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친박계가 언제까지 수세적 방어에만 급급할 수는 없다. 차기 총선을 염두에 둔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비박연합군에 맞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 고민은 당장 친박 세력을 하나로 묶어 일사분란하게 지휘할 사령탑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황태순 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책임자로 빠진 지금 친박계의 가장 큰 허점은 ‘장수’(將帥)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친박계의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7·14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에게 패하는 바람에 힘이 빠져버렸다. 최근에 언행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존재감마저 미미하다. 이 때문에 정부로 나가 있는 최경환 부총리의 ‘조기 복귀설’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최 부총리가 정부 경제사령탑을 맡은 이후 경제활성화를 위한 여러 조치들을 취하고 있고 효과도 나타나는 상황이어서 당장 빼내기는 쉽지 않다.
‘이정현 역할론’도 나오지만 한계가 있다. 이 최고위원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깊지만 친박계 전체를 아우를 만한 정치적 역량이 그에겐 없다. 비례대표 한 번을 포함한 재선 의원에 불과한데다, 리더십이 검증된 것도 아니다. 친박계 안에선 여전히 그를 계파의 중간 허리 정도로 간주하는 분위기도 있다.
따라서 친박계 핵심에선 획기적 반전 카드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무성 대표 조기 강판론’이다. 김 대표의 임기는 2016년 7월까지다. 20대 총선은 같은 해 4월에 있다. 이대로 가면 김 대표가 공천권을 장악한다. 이 경우 ‘친박 학살’은 불 보듯 뻔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김 대표를 2015년 말쯤 조기 퇴진시키고 조기 전당대회를 열거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자는 구상이다. 이 경우 김 대표를 흔드는 과정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이 다시 살아날 수 있고, 그 시점이면 최경환 부총리의 당 복귀도 가능하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하기 위해선 김 대표가 그 사이에 결정적인 실책을 해야 한다. 또는 김 대표가 당을 ‘사당화(私黨化) 한다는 당내 여론이 일어나야 한다. 노련한 친박계 핵심들은 공천에 위기감을 느끼는 의원들을 규합하면 그런 분위기 조성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김무성계는 방어선을 칠 수밖에 없다. 내년 말쯤 새누리당에 대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란의 조짐은 지금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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