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방미] 반기문과의 밀월 서막 되다

2014-09-22     김재현 기자

김기춘 실장·이정현 의원 등 호의적 발언
“차기 주자 만들기 이미 시작됐다” 관측 나와

[일요서울 | 김재현 기자] 가자지구사태와 에볼라바이러스 등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가 연일 눈길을 끄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과 반 총장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어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69차 유엔총회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막됐다. 141개국 국가정상과 정부수반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총회에서는 기후변화·중동사태·북핵 문제 등이 중점 논의된다.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193개 회원국 대표들의 기조연설은 관례에 따라 제1회 유엔총회 사회를 맡았던 브라질을 시작으로 유엔본부가 위치한 미국에 이어 국왕 또는 대통령 참가국, 총리 참가국, 외무장관 참가국 등 순으로 이어진다. 취임 이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서는 박 대통령은 기조연설 첫날인 24일 7번째 순서로 연단에 오른다. 박 대통령은 이를 위해 반 총장을 만나 여러 가지 사안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정치권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 북한 문제와 더불어 차기 대선에 대한 논의를 할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일부에서는 “이미 청와대와 반 총장 측근이 이 문제를 논의한 뒤 이를 반 총장에게 전달했으며, 이번에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을 직접 만나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샘 카함바 쿠테사 우간다 외무장관이 의장을 맡은 이번 총회는 ‘2015년 이후의 개발의제 설정 및 이행’이라는 주제로 1년간 계속된다. 특히 최근 남북관계의 급변조짐에 따라 이번 총회에서 북한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1999년 백남순 외무상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장관급 인사인 이수용 외무상이 총회에 참석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급이 낮은 편이라 이 외무상의 연설은 27일로 예정됐다.

안보리 정상회의는 이번 달 의장국인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재로 시리아 이라크 등의 이슬람 테러 단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테러 전투원(FTF) 대처 방안 등을 논의한다. 특히 이슬람국가(IS) 등 TFT 활동을 조장하는 대표적 테러 단체를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공조와 예방적 조치 등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그동안 안보리 정상회의에서는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 등이 꾸준히 논의돼 왔지만 이번에는 북핵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되지 않을 예정이라는 점도 주목을 끄는 대목이다. 이는 남북관계를 의식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반 총장 긴밀한 동행

이번 유엔총회에서 첫 데뷔무대를 갖는 박 대통령은 반 총장 초청 행사에 참석하고, 자신이 주재한 회의에 반 총장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어서 이를 두고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23일 반 총장 초청으로 열리는 유엔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날 오후 기후재정 회의, 24일 유엔총회 연설, 반 총장 초청 오찬, 글로벌교육우선구상 고위급회의 등 박 대통령의 유엔방문 공식일정 대부분을 반 총장과 함께 한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날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국제평화·안보, 인권증진, 사회경제적 개발 등 유엔 3대 분야에서의 유엔과 반 총장의 활동을 평가하고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기여 의지를 천명하고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유엔이 주최하는 공식 행사 외에 박 대통령과 반 총장 간 면담 가능성도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5차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회의석상에서 조우했지만, 이후 25일로 예정됐던 양자 간 면담이 취소됐었다.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지난해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 이후 1년 만에 재회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개별 만남이 성사될지 정치권의 주목을 끈다. 반 총장이 2017년 차기 대권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초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대구신문의 의뢰로 전국의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유무선 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에서 반 총장은 36.7%로 박원순 서울시장(15.4%), 문재인 의원(8.7%), 김무성 대표(6.3%) 등 다른 후보들을 크게 앞서며 1위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차기 정권재창출을 위해 반 총장의 영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정치권은 인식하고 있다. 이에 박 대통령이 반 총장과 손을 잡을 경우 차기 대권구도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반 총장이 출마해도 대권을 잡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치에 대한 경력이 없어 상처만 입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 조사에서 반 총장을 포함하지 않을 경우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여권 차기 대권주자 중 지지율 1위로 조사됐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의 지지도는 급락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김 대표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 새누리당 인물 중 누가 가장 적임자'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17%의 지지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이어 김문수 전 경기지사(11.4%)가 2위, 정몽준 전 의원(8.1%)이 3위를 차지했으며, 남경필 경기지사와 나경원 의원이 5.1%의 지지를 얻어 공동 4위에 랭크됐다.

하지만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후보로 포함되면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 반 총장을 포함해 여야 모든 인사의 차기 대선후보 적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결과는 반 총장의 압승으로 드러나 반 총장은 향후 대권의 히든으로 자리를 굳혔다.

차기 대선 히든카드 굳혀

반 총장의 대권 출마 가능성에 대한 관측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최근에는 새누리당이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로 반 총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정·관계가 새누리당의 반 총장 영입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박 대통령이 반 총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대권출마 여부에 대해 독려할 예정이라는 말이 야권을 포함한 정치권에 확산되고 있다.

반 총장에 우호적인 인물로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전 홍보수석을 꼽히고 있다. 이들은 연달아 반 총장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2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포럼’을 창립하여 반 총장의 국회 초청을 추진하는 등 지속적으로 반 총장 영입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관계자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반 총장이 2016년 2월로 UN 사무총장의 임기가 만료되면 자연스럽게 2017년에 치를 대선 준비가 가능한 상황이고, 정치적 성향이 확실한 여권인사이기 때문에 여권의 대선주자로 영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하였고 2004년 6월 ‘이라크 김선일씨 피살사건’ 당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정치권과 사회의 압박에도 자리를 보전하는 등 UN 사무총장에 당선되기까지 노 전 대통령의 신뢰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1년 반이 지난 2011년 12월에서야 노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를 해 친노계 인사들 사이에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샀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 “반 총장이 대권을 염두에 두고 향후 변절자라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 ‘친노’ 및 야권과 거리를 두는 행보를 하는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차기 대권 주자가 마땅치 않은 새누리당의 입장에서 반 총장이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충청권 출신인데다가 ‘가난한 자수성가형’ 리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반드시 영입해야 할 인물로 꼽힌다.

반 총장의 영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당내 대권주자인 김무성 대표가 반 총장 영입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김 대표는 반 총장의 대권 도전을 곱지 않게 보고 있다. 사석에서 ‘근거 없이 반기문을 영입하면 안된다’는 시각을 보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을 공식화 하기도 어렵고 반기문에게 네거티브로 접근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이 차기 대권주자로 반기문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 이유로 충청도에서 대통령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사실상 중부권의 표심을 쥐고 있는 게 충청표여서 충청권 인사가 대권주자로 나올 경우 충청권 뿐 아니라 경기지역까지 시너지 효과가 있어 거의 당선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차기 대권에서 반 총장을 이길 대권주자가 여권 내부에 없다는 판단을 굳힌 상태라는 게 소식통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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