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재벌가 의혹들, 변명도 총수 스타일대로

“억울하다” “아프다” “물러나겠다” 상황마다 가지각색

2014-09-15     강휘호 기자




이재현·정태수 등 병환 앞세워 선처 호소
김우중·신동빈·손정의 등 “할 말이 없다”로 일관

카드 유출 사태, 경영난으로 자리 떠난 사장님들
시대가 변했다…각종 채널 활용 즉각 사과하기도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대그룹 총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세간의 관심 대상이다. 그만큼 그들 주변은 수많은 의혹과 논란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횡령과 탈세 등 각종 고소 고발은 빠지지 않는 지적 사항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 대다수가 비슷한 논란을 야기했더라도 해명하고 반응하는 모습은 각자 뚜렷한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적극적인 해명을 하기도 하고,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자진사퇴를 선언하는 경우도 있다. [일요서울]은 그동안 총수들과 기업들이 논란을 마주하는 방식을 분석해봤다.

논란이 된 총수들이 흔히 보여주는 모습 중 하나는 자신의 병환을 앞세워 비난을 무마하려는 태도다. 특히 법정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나올 때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휠체어나 간이침대를 활용해 아픈 기색을 드러내는 일이 가장 허다하다.

일례로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탈세 혐의를 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선고심이 있을 때마다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나타나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 더욱이 병세를 호소하는 총수들은 과거에도 비일비재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휠체어 재판의 원조라고 불린다. 1997년 한보사태, 수서 비리 등 굵직한 정치 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형 확정, 5년 5개월을 복역하던 그는 고혈압과 협심증의 병세로 석방돼 자취를 감췄다.

비자금 조성 및 횡령한 혐의를 받았던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박연차 게이트’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등 역시 비슷했다. 대놓고 앞뒤가 달랐던 인물로는 김하주 영훈학원 전 이사장이 있다.

학부모들에게 국제중학교 입학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9000여만 원을 받고 성적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은 김하주 전 이사장은 영장실질심사 당시 서울북부지법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구급차를 타고 등장했다.

그런데 구속영장이 발부된 오후, 김하주 전 이사장은 법원을 나서며 들어갈 때와는 달리 자신의 두발로 걸어 나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대다수 국민들은 “높으신 분들이 경찰, 검찰, 법원에 출석할 때 휠체어를 타거나 응급차에 몸을 맡기는 것은 관례인 것이냐”며 “사법기관이 얼마나 우습기에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이냐”고 개탄했다.

침묵과 모르쇠

그 다음으로 죄를 짓거나 비판을 받은 총수들이 쓰는 방법은 묵묵부답, 말 그대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지난달 자신의 자서전 ‘김우중과의 대화’를 발간, 15년 만의 명예회복을 선언하고 모습을 드러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당시 “억울함도 있고 비통함도 분노도 없지 않았지만 돌릴 수 없는 과거이기 때문에 감수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적어도 잘못된 사실은 바로잡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다만 민간인의 거액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는 이른바 김우중법의 장본인임에도 추징금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앞으로도 대우그룹이 DJ정부 당시 경제 관료들에 의해 기획 해체됐다는 그의 주장에 대한 진실공방은 더욱 불붙을 전망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지난 4월 신헌 롯데쇼핑 대표의 납품 비리 사건이 불거졌을 때 신동빈 롯데그룹 총괄 회장은 입 열기를 주저했다. 일각에서는 그룹 내 누군가가 나서 경영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거나 그룹의 총수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일갈했지만 신동빈 회장은 말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 비리가 터져 나왔을 때 신동빈 회장은 출장 중이었는데,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많은 기자들이 신헌 대표의 수사에 대한 생각을 물었지만 그는 어떤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딱히 비리나 혐의와 관련된 침묵은 아니지만 올해 추석을 앞두고는 4년째 침묵을 지키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에 대한 관심이 몰리기도 했다.

추석을 일주일여 앞두고 있던 지난달 31일 대구 동구청장은 구청 공무원들과 함께 산으로 출근했다. 일본 최대 통신사 소프트뱅크의 총수 손정의 회장의 고조모 산소를 벌초하기 위해 산을 오른 것이다.

재일교포 3세인 손정의 회장 자산은 166억 달러 정도로 현재 일본 최고의 슈퍼리치다. 그의 아버지는 대구 동구 입석동이 고향이다.

그러나 손정의 회장은 동구청의 정성을 4년째 외면하고 있다. 동구청은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보낸 초청장을 통해 손정의 회장의 대구 방문을 요청한 바 있다. 2012년엔 벌초 장면을 담은 CD를 손 회장에게 보내기도 했지만 별 다른 답변을 못 받고 있다.

동구청이 손 회장의 조상묘역을 손수 벌초해주는 이유는 손정의 회장 가족이 일본에 있고, 친척들이 고령이어서 벌초가 어렵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일부에선 대구 동구에 대한 손정의 회장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이 크지 않냐고 보고 있다.

또 하나의 대처법으로는 고속 자진사퇴도 있다.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벌을 받겠다는 것이다. 올해 역시 자진사퇴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금융권의 최대 논란이 됐던 개인정보 유출 사태만 봐도 자진사퇴가 논란의 대처법으로 얼마나 많이 활용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사상초유의 고객정보 유출사태로 연루된 카드사 사장들은 줄줄이 자진사퇴했다.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은 “국민들에게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히며 자리를 떠난 바 있다.

당시 자진사퇴 선언을 한 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은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도 “책임 통감한다. 행정제재 등 법적 책임을 다 하겠다”고 전했다.

고속 자진사퇴

더불어 금융당국에서도 책임자의 사퇴 압박을 가하는 모습이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기자단과의 티타임을 통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강하게 할 것”이라며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이번 사건을 포함해 앞으로 CEO가 도의적 책임을 꼭 지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도 “해당 그룹의 최고경영자(CEO)가 금감원의 검사와 제재가 마무리되기 전이라도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 인사조치할 것을 기대한다”고 더했었다.

그 외에도 경영에 손을 떼거나 경영전면에서 발을 빼는 재벌 총수들이 늘었다. 범법자의 기업임원 활동을 제한한 법규에 밀려 경영 일선에서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총수의 책임경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등기임원을 사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부인 이화경 부회장이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했고, 두산그룹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의 등기이사였던 박용만 두산 회장과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 등이 대거 등기이사직을 내려놨다. 이들을 두고 연봉 5억 원 이상의 등기임원 보수 공개를 염두에 두고 이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또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STX그룹의 강덕수 회장, 팬택의 박병엽 부회장 등 재계의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기업인들은 경영난으로 무너졌다. 이석채 KT 전 회장,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편 앞서 언급된 경우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해명으로 자리를 지키고 논란을 타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 사실이 아닌 점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잘못된 일이 발생했을 때는 즉각 사과에 나서기도 한다.

적극적인 해명

얼마 전 한 매체가 ‘치명적 독성물질이 든 아기 물티슈가 팔리고 있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을 때 해당 업체인 몽드드는 기업으로서 이례적으로 성명까지 내고 “절대적으로 안전한 화장품 성분이며 이를 마치 유독성 물질인 양 허위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와 관련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면서 결백함을 외친 바 있다.

아울러 태광그룹이 티브로드전주방송 지분을 아들에게 편법 증여 했다는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적극 부인했던 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금융권 주변에서 돌았던 동부제철 유동성 문제에 대해 직접 해명하고 나섰던 일화는 적극적인 기업의 태도를 방증한다.

회장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SK그룹을 보면 최태원 회장의 구속 이후 투자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사회적 기업 지원 등 국가경제와 사회발전을 위한 노력을 적극 홍보해왔다. 당시 재판에서의 정상참작을 기대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의 SNS 채널을 통해 다양한 소통을 하는 이도 있다. 변명이나 해명을 위한 소통은 아니지만 대중을 향해 다가가는 채널이 늘어난다는 점에선 매우 신선하다는 평가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박용만 회장의 SNS 등을 살펴보면 특유의 소탈함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평소 소소한 일상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팔로어가 16만 명을 웃도는 파워트위터리안이 됐다. 더불어 이러한 일상과 이미지를 앞세워 두산그룹은 소통에 능하고 논란이 일어도 투명함을 강조한다는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비슷한 예로는 현대자동차그룹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수년간 소비자들의 공적 아닌 공적으로 분류돼 왔다. 제품 가격과 품질, 서비스 등의 문제가 불거져 나왔고 이를 감시해야 할 노조까지 귀족 이미지가 씌워져 대표적 밉상기업으로 낙인됐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고객들과의 만남을 통해 각종 오해를 해소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기업을 둘러싼 오해를 해명하는 ‘이해 그리고 소통’ 행사를 열기 시작한 것인데 초청 대상은 주로 블로거와 동호회 회원 등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층이었다. 전형적으로 SNS를 활용한 오해 풀기 전략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침묵은 금이다’라는 명언은 옛말이 된 듯 보인다.

총수 주변에서 “침묵은 얄팍한 속임수”라든가 “잠깐만 넘기면 되겠지 하는 꼼수를 부리지 마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논란이 됐을 때는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누구보다 홍보에 앞장서야 보다 빠르게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기업들이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