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새정치&헌정치]‘안철수 현상’은 끝나지 않았다!
- 새정치’의 3대 덕목, “답은 현장에 있다”
2012년 7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정치적인 저서가 이렇게 신선함을 주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이러한 생각으로 정치에 입문 하겠습니다’라며 대중의 평가를 기다리는 형식은 기존의 입으로만 하는 정치인과는 분명 달랐다.
그런데 ‘안철수 현상’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 의원은 현재 가장 큰 정치적 시련을 겪고 있다. 정치에 입문한 2년 동안 참으로 많은 정치적 결단도 있었다. 18대 대선 출마선언→대선후보 사퇴→무소속 국회의원 당선→새정치연합 창당선언→민주당과 합당선언→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당 대표사퇴 까지 줄곧 한국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현재 안철수 의원은 ‘안철수 현상’만 남기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복기해보면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새정치’를 표방하며 등장했는데 정작 정치개혁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안철수의 ‘새정치’가 무엇이지 명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하면 정치의 중심에 있었으나 정작 정치를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당대표가 정치를 배우면서 한다면 그 정당이 제대로 갈수 있겠는가? 정당의 공식일정만 쫒아 다니며 얼굴마담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과연 국민이 요구하는 ‘새정치’는 무엇일까? ‘국회의원이 하는 일 없으니 정수를 줄이자’는 것이 정치개혁의 요체일까? 이러한 논리라면 국회를 없애버리면 가장 큰 정치개혁이 아닌가? 필자가 국민이 요구하는 ‘새정치’를 간단히 세 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싸움질 하지마라’ 둘째, ‘도둑질 하지마라’ 셋째,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쉽게 말하지만 어려운 문제이다. 진정한 정치지도자와 책임 있는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근본적으로 개혁해야할 정치적 과제들을 담론으로 제시하고 진지한 토론과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개혁해야할 정치적 과제가 어떤 것들이 있을지 살펴보자.
◇ ‘싸움질 하지마라’
다시 말하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정치는 여야가 대립하고 의견을 달리하면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절충과 타협 없이 계속되는 정치싸움에 국민은 염증을 느끼게 된다. 정치싸움에 국민은 없고 정파의 이익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가로막고 있는 근본적인 한국정치의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력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공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기관을 통제하며 수단화 할 수 있다. 또한 집권여당의 최대 계파수장으로서 당을 장악하고 통제한다. 당․정․청 모두 대통령의 한마디에 움직이며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조직이 된다.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는 삼권분립 국가가 아니다.
집권여당은 청와대의 싸인이 없이는 야당에게 양보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개발 사업’을 놓고 여야는 국회에서 난투극을 벌였다. 야당은 대운하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보의 높이와 수를 줄이면’ 국회에서 논의하여 통과시킬 수 있다고 하였으나, 청와대의 요지부동이 국회의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없애버려 벌어진 사단이다.
현재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도 마찬가지이다.
순수하게 국회에서 여야의 대표들이 대화와 타협을 한다면 벌써 끝났을 일이다. 왜냐하면 국회의원들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조사를 행사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별법에 의해 조사를 당해야 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이 있기에 타협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검 추천권, 수사권과 기소권 등 대통령이 수용의지만 있으면 바로 끝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국회 위에 군림하면서 벌어지는 소모적인 정치싸움이다.
이제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하는 개헌을 진지하게 논의하여야 한다.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정․부통령제 등 어떤 이름이든지 우리의 현실에 맞는 권력구조를 새롭게 만들어야한다.
둘째, 지역구도에 기대고 있는 양당체제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가로막고 있다. 영남과 호남, 동과 서로 갈라져 있는 우리의 정치구조는 대화와 타협은 변절과 배신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쉬운 현실이다. ‘공천이 곧 당선’이기에 충성도 강한 정치인이 장수할 수 있다. 따라서 앞뒤 가리지 않고 상대 당에 맞서 싸우는 정치문화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소선거구제를 바꾸어야할 때가 되었다. 민주화 이후에 집권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도입한 소선거구제는 이제 생명을 다한 것이다. 정치학에 ‘뒤베르제 법칙’(Duverger's Law)이 있다. 프랑스 정치학자 뒤베르제가 말한 ‘소선거구제는 양당체제를 낳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하게 되면 사표를 방지해 지금의 지역구도를 완화할 수 있으며, 제3당의 존립이 쉬워져 국회는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더욱 커지게 된다. 선거구제 개편은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무엇보다 어려운 난제이다. 따라서 독립된 외부기구를 설치해 추진해야한다.
셋째, 정당마다 계파의 줄서기 정치문화가 정치를 왜곡하고 있다. 현대정치는 정당정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여당도 대통령으로부터 배척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정당은 여야 모두 생산적이지 못한 계파에 소속되어 있어야 살아남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당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의 기득권을 깨야 한다. 특히 현역의원의 기득권을 과감히 없애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이 국민을 보고 정치하게 되고, 국회에서 공부하며 정치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된다. 예를 들어 공천심사위원회에 현역의원을 배제하고, 원외 당직은 국회의원이 맡지 않으며(지역위원장 포함), 국회의원 활동 실적제를 정형화하여 평가를 공개해야 한다.
공천제도는 선거가 임박하여 지도부의 입맛에 맞게 당규를 개정하는 그릇된 관행을 없애야 한다. 따라서 공천제도는 정기전당대회가 있는 2년 내에는 개정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의 공천을 받고자하는 후보들은 예측 가능한 제도로 안정적인 준비를 할 수 있다. 또한, 공천제도에 있어 전략공천은 악이고 오픈프라이머리는 선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은 잘못된 관점이다. 올바른 공천의 핵심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용하는 사람들의 객관성과 진정성에 있는 것이다.
◇ ‘도둑질 하지마라’
우리나라에서 흔히 정치인 하면 도둑과 동일시한다. 경제인은 돈을 벌기 위해서 권력이 있는 정치인에게 돈을 바쳐야만 했으며, 정치인은 돈 없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고비용 정치구조가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 고리가 거의 사라진 현재도 정치인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많이 들어가기에 불법정치자금을 누구나 받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도둑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첫째,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와 위반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사무실을 운영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경조사에 다니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통로를 무조건 차단해버리는 것이 정치개혁일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출판기념회를 보자. 국회의원들이 후원회 행사를 통한 정치자금 모집이 금지가 되자, 출판기념회를 통해 사실상의 정치자금을 받는 창구로 활용하였다. 그런데 출판기념회는 수입과 지출보고도 없는 그야말로 불법 정치자금의 성격이 더 많다. 그렇다고 출판기념회를 금지시키는 것이 해답일까? 정치인은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한데 합법적인 창구가 제약되어 있다면 더욱 음성적인 자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집회를 통한 정치자금 모집도 허용해주고, 출판기념회도 자유스럽게 할 수 있게 해주자. 다만, 수입과 지출은 투명하게 보고하게 하고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하자. 그리고 누락이나 허위 보고를 하였을 경우는 수사를 통해 엄중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현재 선관위 정치자금과에서 정치인의 정치자금 회계 지출보고를 받고 있으나 다분히 서류 검사수준의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선관위나 검찰에 정치인의 정치자금 보고를 담당하는 ‘특별기구’를 설치하여 강력하게 관리하여야 한다.
또한, 알선수죄나 뇌물죄에 해당하는 범죄는 회기중에도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없애야 한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은 공권력을 행사하여 입법기관을 무력화하려는 기도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국회의원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법은 만인에게 공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둘째, 고비용 정치에 대한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공직선거에서는 선거공영제로 대부분 비용을 보전 받게 된다. 아직도 정치인이 많은 돈이 필요한 곳은 사무실 운영비용, 지도부에 출마할 경우 선거비용이다. 지구당이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으나 현실적으로 지역관리를 위해서 국회의원은 사무실을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원외 지역위원장도 별도의 사무실을 내고 지역을 관리한다. 지역 사무실을 운영할 경우 매달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군․구청이나 자치회관 같은 공공장소를 정치인이 저렴한 비용을 들여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정당의 지도부에 출마할 경우 별도의 후원금을 모집할 수 있으나 전국조직을 관리해야할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정당의 지도부 선출대회에 한해서 중앙당후원회를 부활시켜 정치자금을 충당시키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자금은 불법과 편법을 사전에 방지해 합법적인 공간에서 감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라’
정치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첫 번째로 삼아야 한다. 먼저, 사회 양극화 속에 소외되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 영세자영업자 문제, 전세대란, 청년실업, 노인빈곤 문제 등 정치가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산적하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은 서서히 엔진이 멈추고 있는 상황이다.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국가적 에너지를 모아야하며,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정치가 힘을 모아야 한다. 또한, 세계 유일의 분단상황을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중․장기전략을 세워 주도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당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와 멀어져 있다. 역량이 부족하다. 자체적으로 정책을 수립할 능력도 없을뿐더러 정부가 만들어 오는 계획을 검토하여 비판할 수 있는 수준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로지 언론을 향해 한마디씩 평론하는 것이 정책생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의 정책생산 능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정책연구소는 정당의 집권비전을 만드는 인재풀이 있어야 한다. 정부를 이끌어갈 수 있을 정도의 능력 있는 인재들이 모일 수 있게 실질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정당의 도식화 되어 있는 기존체계를 혁파하여 생활정당을 구현해야 한다. 사회적 아젠다를 중심으로 ‘위원회체계’로 구조를 개편하고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 온라인을 통해 국민의 민원을 접수하고 국회를 통해 실현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답은 현장에 있다. 현장의 소리가 정당에 수렴되고 국회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특별한 시기에만 정당의 지도부가 시장을 도는 형식적인 현장이 아니라, 수시로 소통하고 함께하는 정당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생활정치의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한 정치인에 대해서는 정당공천에서 특별한 우대를 해주는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 정국이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정치불신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국회는 개점휴업이며 정치는 실종되었다. 국민의 분노는 마그마가 되어 수면 아래에서 끓고 있으며 언제 분출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여야를 떠나 정치권의 공멸이 다가오고 있다. 국민은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데 정치권 어디를 보아도 새정치는 요원하다. ‘안철수 현상’보다도 몇 배는 큰 ‘현상’이 화산이 되어 폭발 될 것임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김상진 시사평론가>